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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9]슬프도소이다 > 목사님칼럼

[2002/10/29]슬프도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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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23 12:03 조회 5,068회 댓글 0건

본문

슬프도소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여느 때 같으면

이런 노랠 들어도

아! 귀에 익은 노랜 갑다 하며

그저 그렇게 넘어가련만

주책이라서 그런지 늙어 가느냐고 그런지 슬퍼졌다.


넓은 바닷가에 비해서 오막살이 한 채가 외롭고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의 삶이 애처롭고

늙은 아버지를 놔두고 영영 가버린 딸도,

그 딸을 잊지 못해 목메어 부르는 아버지도 슬프다.


슬픔은 추수감사절 설교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보아스처럼 룻과 같은 이웃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하다가,

룻이 불쌍해 진 것이다.

남편은 죽고 타국에 와서 이삭을 주우며 시모와 사니,

오죽 했겠나?


설교 후 어느 집사님은,

하나님은 둘이 살라고 했건만,

사람들은 둘이 못살고 혼자 살다가 고생한다고 응수를 했다.


둘이 사는 세상에서

혼자 사는 사람, 아니 사람들

고생을....한다.

눈여겨보니 그 삶은 슬픔의 연속이다.


이 마음과 이 눈으로 여기를 보고 저기를 보니 온통 슬픈 세상이었다.


동생은

15년간 다니던 직장을 청산한 후

기대를 갖고 사업입네 하며 시작하였지만,

돈 걱정을 하며 한숨을 내 쉬니 슬픔이고,


애들은 놀지도 못한 체 성적에 목숨 걸고

공부에 닦달을 당하니 슬프고,


한 치매 노인은 자신은 잊어 버려도 자식만큼은 잊지 못해

「자식 잘되기를 바래…….」하니 그 백발의 남은 생도 슬프고,


휠체어 앉아 밤늦도록 감을 파는 아저씨도 슬프고,

오줌 똥 못 가린다고 묶여 있는 강아지도 슬픔이었다.


한 삼일을,

이렇게 슬프도소이다 하며 끙끙 앓아야 했다.

풀리지 않는 삶의 문제와

반복되는 고통사와 씨름 아닌 몸살을 해댄 것이다.


슬픔 중에 요한복음을 읽었다.

읽는 시간에 평안을 가졌다.

본래 믿음의 안목을 회복하고 평정을 찾은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아주 평안히 잘 수 있었다.

약(約)발이 나타난 것이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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