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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7]변질 > 목사님칼럼

[2004-10-27]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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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23 13:54 조회 5,0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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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에
어느 여성잡지사의 용기 있는 폐간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창간의 목적은
여론조사대로 교양잡지 이었습니다만,
뭇 여성들이 조사와는 다르게
가십거리의 잡지를 더 선호하여
그만 이 잡지는 읽히지 않고
팔리지 않는 잡지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여러 몸부림과 길고 긴 생각 속에
가십거리의 잡지로 변질하느니
차라리 목적에 맞는 폐간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때 나는
논개의 죽음과 같은 숭고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순교자의 순결과 같은 이상을 보아
마음으로 큰 갈채를 보내었습니다.

잡지사의 폐간은 곧 죽음입니다.
원수가 아닌 이상 내 죽음을 기뻐할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쉬운 변질보다 어려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창간 목적에 부합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변질이 만연되었습니다.
달라진 가치관 탓으로
개인도 기관도 유감 되게 교회조차도
변질은 재치요 웅변이요 수단이요
불가불의 의미 있는 정치라고 합리화 되었습니다.
결국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존재만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
돈 몇 푼에 의리와 신의를 버리고
사랑도 버리고 애들도 버리고
신앙도 버립니다.

특별히 교회의 경우
거룩성은 상실된 체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온갖 세상 것이 다 유입되고 있습니다.

전도합네 하며
각종 이벤트와 경품과 마술이 들어왔습니다.
예배의 감격을 맛보자 하며
쇼가 된 곳도 있습니다.
부흥입네 하며
터 늘리기와
타 교회 교인 빼내 오기를 밥 먹듯 하고 있습니다.

공동묘지의 묘가 느는 것을
부흥입네 발전입네 할 수 없듯이
생명 없는 증가는 한갓 비대에 불과할 뿐입니다.

굳이 거창한 종교개혁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굳이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커라, 늘려라, 많아라가 아닌 거룩하라입니다.

이때 세상의 소리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성이나 원망이 아닌
교회다움을 촉구하는 우려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신선한 소식이 들려오기에 희망을 봅니다.
어느 신학대학은 컨닝 안하기
어느 단체는 통곡기도하기
어느 교회는 지역섬기기 등…….

당연한 모습이지만,
변질이 판을 치다보니 새삼스럽기만 합니다.

하루아침에 오는 변질은 없었습니다.
변질이란 이름으로도 오질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교양을 운운했지만
실상은 가십거리를 찾는 이중의식처럼
변질은 변질을 말하는 나부터
자기중심 사고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운 진술과
스스로의 탄식에서 떠나
초병의 경계를 갖어야 합니다.

신부에게 요청되는 것은
예쁜 드레스나 아름다운 패물보다
순결한 마음과 몸이듯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요구는 거룩임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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