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짝사랑 > 목사님칼럼

짝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8-05-29 13:11 조회 5,229회 댓글 0건

본문

또 중국에 들어 가려고 항공권을 예매했습니다.

올해만 들어서도 벌써 3번째니 보다 못한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왔다갔다 하지말고, 아예 그곳에서 사역을 하면

이곳에서 정리 할 것을 정리해서 곧 뒤따라 들어 가겠습니다."


그러나 시기상조입니다.

아직, 아이들의 치닥꺼리가 남아 있고 교회도 자리를 잡지 못한체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 중국행은 가족 다수의결이었습니다.

물론, 아내도 나중에 지지했지요

중국, 그것도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이렇듯 찾는데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 산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그곳에, 건물없는 신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10년,, 졸업생은 약100명이 배출되어, 나름대로 성역에 힘쓰고 있고

그들의 전체 성도수가 약 8000명가량 되며,

지금도 동북3성에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탄압이 있었지 이제는 묵인정도까지 가고 있어

학생들은 긍지를 갖으며 수고한 이들은 보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선 교회를 사임하고 지금의 교회를 개척하는데 여러 사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 중국선교를 좀 자유롭게..좀 왕성하게.. 하고픈 의욕도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재정이 부족합니다.

누구의 후원이 없다보니 갔다 올 때마다 빚이 늡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잖습니까?

형편이나 감정따라 하고 말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중국 그리고 연변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사랑중에 짝 사랑일 겁니다.


여기에 사연이 있습니다.

벌써 십 수년전의 일 인데 방송합네하며 출입하던 극동방송사를 통해

당시의 탈북자 수십가정을 수년간 신앙지도하였습니다.

그때는 탈북자를 위한 적응 훈련기관인 하나원도 없을 때인지라

많은 탈북자들이 국정원의 조사를 마치면 방송사를 통해 곧 제게 왔던 겁니다.

그들의 신분도 다양하여 러시아벌목공. 운전수. 군장교.노동자 등이었습니다.

이들을 가르친다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의식과 불신앙 때문이었지요

얼마후 북한에 큰 기근으로 죽는 이가 수백만명이 되고 중국으로 넘어오는 이들의

숫자를 가늠조차 못할 때 이 실태를 살피던 중, 북경, 심양의 대도시 교회들은

도시의 조명에 묻히고, 침묵하는데 비해 두만강상류 그 변방의 조선족 농촌마을의

교회들이 불 밝히고 그들을 위해 목숨걸고 구원해 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고, 가난하고,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교회들이 북한 구제나 선교의 첨병인데,

큰 충격받았습니다.

새삼 조선족교회의 역할을 실감했던 겁니다.


또 지난 공산정권속에서도 이런 일을 위해 탈북자의 탈출지역에 교회를 앞서

준비시켜 논 하나님섭리도 깨달았습니다.

부랴부랴 교회에 형편을 소개하고 조선족교회를 위한 신학교설립과 탈북자 치료를

위한, 병원설립을 할 수 있었지만 병원은 개원전에 사람 잘못 만난 탓에 손해보면서

교회는 중국 전체에 손 떼고 관심조차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까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출산했기 때문입니다.

고독한 사역이 시작 된겁니다.

언제는 미국의 목사님들이 나섰고

언제는 몇몇 목사님과 교수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했지만 멀다고해서..

돈많이 든다고해서..공안에 잡혔다고 해서..조선족교회가 도와 달란다고 해서..

누구는 호랑이 꼬리 잡은 것 같다고 해서..결국은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힘들지만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영아유기하는 듯하여..

숫탉이 울어 새벽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숫탉은 새벽에 꼭 울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숫탉이 잠자면 새벽을 누가 알리겠습니까?

조선족교회를 외면하면 북한이 강냉이는 물론 하나님의 '하' 자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도 많은 탈북자들이 교회로 옵니다 .

교회로 가면 받아준다더라 하는 저들 속의 소문이 있기 때문이며

북한이 탈북자를 붙잡아 조사하는 중에, 중국에 있을 때 선교사와 교회에 접촉했는가

를, 크게 심문하는 것을 보면 그 역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관계가 있어서..잘 나서.. 혹은 마음에 들어서..

내게 있어 조선족 교회들은 마음에 든 까닭입니다.

저들의 가난이.. 저들의 무식이.. 저들의 북한 연계가..마음에 와 닿았던겁니다.

조선족 사회가 많이 발전합니다.

어둡고 매캐한 연기 냄새로 가득한 거리가 밝아지고

닭장같던, 붉은벽돌 집들도 아파트군으로 미끈하게 올라 갑니다

인력거와 나귀와 국적불명의 차들로 혼잡했던 거리도, 새차의 물결로 요동칩니다.

물론 교회의 순수성도 예전과 다릅니다.

자연 탈북자나 북한에대한 관심도 식어진 듯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만이 우리가 못하는 일

즉 북한을 왕래하며, 살기위해 도망나온 탈북자를 직접 안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조선족 사회도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돈 벌러 외지로 나간 탓에 이혼이 심각하고, 방치된 청소년들이 탈선하며

노인복지 문제가 화급합니다

이 유일한 대안은 복음 아니겠습니까?

유감되게 저들에겐 아직 치유나 회복의 능력이 없습니다.

뿌리도 내리기 전에 돌림병 만난 벼 같습니다.

서리를 만났다면 차라리 포기가 낫겠지만 아직은 그렇치않은 만큼, 회생가능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우리네의 교회사정을 압니다.

하나님의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음도 압니다.

어느 교회는 물조차 없는 아프리카를 위하고

어느 교회는 우상숭배하는 동남아시아에 최선을 다하고

어느 교회는 국내까지 쳐들어와 마구 헤치는 이슬람을 향하고

더러는, 우리의 노약자들 또 해외 노동자들을 끌어 안고..등

다 주의 뜻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생각하면 대견하고, 반면 저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누구의 말 마따나 할 일은 너무 많은데 힘이 딸려..

어찌할 것없어, 힘들고 답답하여, 주저 앉아 울고 싶어도 울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빚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위로는, 오직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능사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신념같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또 믿는 것은. 중국 연변의 짝사랑은 하나님이 제게 주신 신령한 부담이라는 사실입니

다.

북한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하지요

이런 저를 제 친구들은 내 조상이 중국에서 오지 않았겠나? 하며 반문합니다.

사랑은 뭐든 좋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그곳의 볕이 좋습니다.

그곳의 석탄냄새도 좋습니다.

여기서 잘 먹지 않는 된장찌개를 그곳에서는 조석으로 먹습니다.

며칠 후 잠시 떠나 올 것을 생각하여 짐을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T셔츠 를 많이 준비합니다.

계속되는 학교 운영자금을 그곳에서 만들려고 구상했기 때문입니다.

인디언들의 격언인가요?

"고기를 주기보담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켜 주라"를 시도해 보는 겁니다.

제게도, 우리들 모두에게 있는 끝나지 않는, 짝사랑이 있습니다.

누구는 이런 나를 팔자라고 치부했습니다만 여하한 이 사랑은 주님 오셔야 끝나는 사

랑일 겁니다.


왜그럴까요?

이 사랑은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우리의 마음과 시간과 재정과 발길과 손길에

민들레 홀씨되어, 오대양 육대주에 날아가 꽃 피우는 것은

이 감동과 이 은혜와 이 수고가 정녕 꽃 필 겁니다. 


실화인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장면이 생각납니다

생전의 쉰들러가 자신의 사업장으로 끌어 들여, 살려논 유대인 후손들이

쉰들러의 묘지를 찾아 추모하는 장면인데, 그 추모 행렬의 끝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사람살리는 가치만큼, 더 귀한 가치가 없음을

사람살리는 사업만큼 더 귀한 사업이 없음을 웅변해 주었습니다.

"이 금 뱃지가 무엇인데 그것을 달고 다녔을까? 이것을 팔았다면 몇명은 더 살렸을텐

데.."

"이 자동차를 왜 탔을까? 이 차값이면 더 살렸을텐데.."

죽은 생명을 안타까워하는, 쉰들러의 자책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예수믿는 이들의 마음이고 자세이고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 주소서

철들게 하소서

눈 뜨여 보게하소서

막힌 귀 뚫어 듣게하소서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