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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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보다 경험이 낫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경험도 소중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습니다.
경험이 없을 때,뭐든 선무당이 되어 사람잡기가 됩니다.
그래서 법조인도 의료인도 심지어 며느리도 신부수업을 통해
앞서 현장경험을 쌓습니다.
이론만 박식하면, 학자가 되어 박사소리를 듣습니다.
경험만 풍부하면, 달인소리를 듣습니다.
다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나같은 목사는 어때야 되나요?
두 소리를 다 들어야겠기에 쉽지않습니다.
실제 나 개인의 삶에도 그래야 되지만 그렇치 못 할 경우
간혹 내면의 충돌이 옵니다.
며칠 전 아들이,
"아빠, 설교를 야구장의 응원하는 사람들 처럼 선동시켜 보세요
사람들이 신나할 것에요"
한마디로 선동가가 되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아들의 농담이지만,목사가 선동가가 될 순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지않는 바를 믿으라 할 수 없고
하지않는 바를 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목사에게 이론의 신학은 중요합니다.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바탕에 자신은 물론 남도 세우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목회는 골방만이 아닌 현장이기에 현장감은 중요합니다.
목사의 경험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전도사,강도사,부목사,이 과정이 필수가 됩니다.
그러나 더 필요합니다.
영혼과 삶을 터치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여러경험, 아마 죽도록 필요할 겁니다.
주일인 어제, 또 새로운 현장실습을 했습니다.
기상과 함께 어지럼움이 왔습니다.
혼자 산책을 해 보았습니다.
속이 메스꺼웠기 때문입니다.
눕고 싶어 누우면 어지럼이 더 했습니다.
모든 예배를 마친 후에도 증세는 계속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런 증세가 많았습니다.
뭐 귀에 돌이 박혔다고 하던데,
밤에 잠 못 잘 것같아 아내와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아내의 말마따나 천하의 예목사님이 탈이 나 응급실에 간 겁니다.
큰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몇가지 검사 후
이빈후과와 신경외과를 예약하고 약과 함께 귀가했습니다.
걸어들어 간 응급실이지만 그 곳의 짧은경험은 좋았습니다.
모두가 급한환자들이기에 신음소리가 컸습니다.
보호자들은 놀란표정이었습니다.
내가 편안하다,안전하다, 배부르다,졸립다 할때도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24시간 이랬던 겁니다.
잠시 잊었던 기도의 제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응급실의 현장실습은 몇사람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풍을 맞은 몇목사입니다.
죽는것과는 다른,건강을 잃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도 그럴 수 있었고,그렇다면 그 후의 생활은
어떨것이다 하며 쉽게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불행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인체의 신묘막측함입니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물마시는 것, 눈 깜박거리는 것등
아주 작은 행동이나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거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몸안에 기기한 장치를 해놓으신 것인데
그게 뭐든 잠시 고장나니 휘까닥하는 겁니다.
이런 장치, 이런 상황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럼에도 튼튼했던 것은, 안전했던 것은 내가 아닌
주님의 보호였습니다.
눕지도 못한체,병원응급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이 생각을 하니
어느 덧 입가에는 찬송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제는 살만하냐"고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약을 먹지만 아직도 머리을 움직이면 어지럼이 옵니다.
그럼에도 습관따라 목욕재계했습니다.
방금 전에,침대모서리에 앉아 잠깐 기도도 했습니다.
"주님,그동안 지켜주신 것 감사합니다.그럼에도 이 몸이 불의의 병기로
쓰여졌네요,의사든 약이든 고치시는 이는 주님이신데 낫게 하소서
주님을 다시금 범사에 인정하며 의의병기로 이 몸 살도록 하겠나이다."
목욕재계한 것은 한번 더 기도하기 위한 예를 준비한 겁니다.
인생살이가 마치 쵸코렛상자 같아서 어떤 맛을 볼련지 모르지만
아니 그 맛을 다 경험할 순 없어도 목사로써는 단맛보다 쓴맛 경험이
유익하고 유용합니다.
단맛에 익숙하면 단 것도 모르고 쓴맛은 진저리치겠지만
쓴맛에 익숙하면 단맛은 아주 달고 아주 쓴맛도 받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요,쓴맛이 몸에 좋은 것을,
쓴맛이 단맛보다 더 다양함이 있음을,
목사의직임은,맛 감별사는 아닙니다만
쓴맛을 겪는 이들에게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도 이해하고
단맛을 가리키는 역할일 겁니다.
병원 응급실을 다녀왔더니' 현장실습' 실천신학 학점이
4점 만점에서 B+는 받을 듯 합니다.
전8: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경험도 소중한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습니다.
경험이 없을 때,뭐든 선무당이 되어 사람잡기가 됩니다.
그래서 법조인도 의료인도 심지어 며느리도 신부수업을 통해
앞서 현장경험을 쌓습니다.
이론만 박식하면, 학자가 되어 박사소리를 듣습니다.
경험만 풍부하면, 달인소리를 듣습니다.
다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나같은 목사는 어때야 되나요?
두 소리를 다 들어야겠기에 쉽지않습니다.
실제 나 개인의 삶에도 그래야 되지만 그렇치 못 할 경우
간혹 내면의 충돌이 옵니다.
며칠 전 아들이,
"아빠, 설교를 야구장의 응원하는 사람들 처럼 선동시켜 보세요
사람들이 신나할 것에요"
한마디로 선동가가 되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아들의 농담이지만,목사가 선동가가 될 순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지않는 바를 믿으라 할 수 없고
하지않는 바를 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목사에게 이론의 신학은 중요합니다.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바탕에 자신은 물론 남도 세우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목회는 골방만이 아닌 현장이기에 현장감은 중요합니다.
목사의 경험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전도사,강도사,부목사,이 과정이 필수가 됩니다.
그러나 더 필요합니다.
영혼과 삶을 터치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여러경험, 아마 죽도록 필요할 겁니다.
주일인 어제, 또 새로운 현장실습을 했습니다.
기상과 함께 어지럼움이 왔습니다.
혼자 산책을 해 보았습니다.
속이 메스꺼웠기 때문입니다.
눕고 싶어 누우면 어지럼이 더 했습니다.
모든 예배를 마친 후에도 증세는 계속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런 증세가 많았습니다.
뭐 귀에 돌이 박혔다고 하던데,
밤에 잠 못 잘 것같아 아내와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아내의 말마따나 천하의 예목사님이 탈이 나 응급실에 간 겁니다.
큰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몇가지 검사 후
이빈후과와 신경외과를 예약하고 약과 함께 귀가했습니다.
걸어들어 간 응급실이지만 그 곳의 짧은경험은 좋았습니다.
모두가 급한환자들이기에 신음소리가 컸습니다.
보호자들은 놀란표정이었습니다.
내가 편안하다,안전하다, 배부르다,졸립다 할때도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24시간 이랬던 겁니다.
잠시 잊었던 기도의 제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응급실의 현장실습은 몇사람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풍을 맞은 몇목사입니다.
죽는것과는 다른,건강을 잃는다는 것의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도 그럴 수 있었고,그렇다면 그 후의 생활은
어떨것이다 하며 쉽게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불행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인체의 신묘막측함입니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물마시는 것, 눈 깜박거리는 것등
아주 작은 행동이나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거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몸안에 기기한 장치를 해놓으신 것인데
그게 뭐든 잠시 고장나니 휘까닥하는 겁니다.
이런 장치, 이런 상황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럼에도 튼튼했던 것은, 안전했던 것은 내가 아닌
주님의 보호였습니다.
눕지도 못한체,병원응급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이 생각을 하니
어느 덧 입가에는 찬송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제는 살만하냐"고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약을 먹지만 아직도 머리을 움직이면 어지럼이 옵니다.
그럼에도 습관따라 목욕재계했습니다.
방금 전에,침대모서리에 앉아 잠깐 기도도 했습니다.
"주님,그동안 지켜주신 것 감사합니다.그럼에도 이 몸이 불의의 병기로
쓰여졌네요,의사든 약이든 고치시는 이는 주님이신데 낫게 하소서
주님을 다시금 범사에 인정하며 의의병기로 이 몸 살도록 하겠나이다."
목욕재계한 것은 한번 더 기도하기 위한 예를 준비한 겁니다.
인생살이가 마치 쵸코렛상자 같아서 어떤 맛을 볼련지 모르지만
아니 그 맛을 다 경험할 순 없어도 목사로써는 단맛보다 쓴맛 경험이
유익하고 유용합니다.
단맛에 익숙하면 단 것도 모르고 쓴맛은 진저리치겠지만
쓴맛에 익숙하면 단맛은 아주 달고 아주 쓴맛도 받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요,쓴맛이 몸에 좋은 것을,
쓴맛이 단맛보다 더 다양함이 있음을,
목사의직임은,맛 감별사는 아닙니다만
쓴맛을 겪는 이들에게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도 이해하고
단맛을 가리키는 역할일 겁니다.
병원 응급실을 다녀왔더니' 현장실습' 실천신학 학점이
4점 만점에서 B+는 받을 듯 합니다.
전8:1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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