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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전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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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4-24 12:49 조회 4,89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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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화려하게 만발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문자로 아닌 글을 올립니다.

어느 동네든 교회가 많지만 이곳에도 많답니다.

동서남북,사방 1km 쯤 되는 아파트 단지인데 교회는 거반 25개소가 넘는답니다.

나 사는 집을 중심으로 하면, 마치 혁대처럼 교회당이 줄이어 서있지요.

바로 집뒤편의 교회당은 작년에 경매나왔는데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견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편의 교회당은 이 보다 먼저 경매나왔는데 며칠 전에는 간판조차 없어졌습니다.

소문이 참 무서운 것은 "경매나왔다" 하니 교인들조차도 발걸음이 뜸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3년 전,제가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이곳 교인들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질 못했습니다.

어느 예배요일이든 불빛이 밝질않았다가 이젠 아예 캄캄해 졌습니다.

목사님의 고통은 어떨까? 성도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 앞을 지날때마다 연상되었지요.

누구보다 목회자 심정을 알기에 그들은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나와 우리 교인들은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답니다.

이 동네,와 보셨잖습니까? 단지는 작은데 교회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저편 상가에 교회가 또 들어 섰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교회모습과 형편을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어제 만난 수학학원장 집사는 요즘 학원도 반토막이 났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습니다.

불경기의 마지막 보루인 학원마져 힘드니 불경기를 앞서 겪는 교회들은 오죽할까요?

저도 겪는 중이기에 사무칩니다.

그래서 요즘 목사들이 하는 말이 있답니다.

"그저 살아 견디기만 해주오" 자위이며 동역자를 향한 격려랍니다.

들어 보셨나요?

이런 난국에, 그럼에도 불난 집에 부채질 당하는 꼴로 미숙한 목사들의 여러 비리사건과

곪디곪은 한기총문제,

나아가 이단까지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운영은 물론 성장에도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교회에도 그랬음을 기억합니다.

대형교회에서 온 정신이상의 자매를 수년동안 잘 양육하여 온전케하니 다시 그 대형교회로 옮겨가더라.

어느 날 오랫만에 낯익은 이가 왔기에 반가히 맞았더니 신천지였기에 황당했더라.

그 목사님으로 부터 실감나게 들은 말입니다.

상황은 이러한데도, 교회들이 어느 덧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금요,수요기도회도 하지않는 교회로써

허다히 목격되니 기독교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단의 방해 심각하지요.

수년 전에 우리 교회에도 스쳐갔지요.

wcc 부산총회건으로 여전히 대립의 각을 세우는 큰교단들이 만사 제치고 연합하여

신천지에 대한 경고장을 산하교회당에 붙이기로 합의한 뉴스를 보니 그 폐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보니 천주교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한마디로 신천지에 신 구교가 마다않고 밀리는 양상입니다.

신천지가 아니라 그 할배라도 교회에 오면 오히려 회심하고 참신자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치 못하니 일제히 경계령을 내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저들의 극성보다 허약한 교회의 속살을 치부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공개한 궁여지책입니다.

유감이지요. 기존교인이 왜 신천지로 가나요? 왜 신천지는 기존교회에 오더라도 기존교인처럼 않되나요?

왜 기존교회의 중직자조차 신천지에 빠지나요? 이게 무엇인지요?

왜 중형교회 이상의 교회들이, 왜 열심있고 책임있는 제직들이, 저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왜 이런일로 교회내의 열심있고 책임있는 제직들을 조심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되었나요?

이유가 무엇 일까요?

비록 이런 교회들과 제직들이 저들의 목표일지라도 그래서 우리안에 들어와 교묘한 수단을 부린다해도

설령 우리가 방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저들을 능가하면 될텐데 그렇치 못한 것이 큰문제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단 감별보다 자신을 키우면 되지 않겠나요?

가짜를 향한 경고, 가짜에 대한 방지책, 가짜감별법 교육보다 온전한 신앙의 내가,

참신앙의 우리가, 정금된 반석위의 교회가 되면 되지 않을까요?

진짜를 붙들면 가짜는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매년 겨울이면 감기와 독감이 유행됩니다.

예방백신과 치료약이 있습니다만 건강함이, 튼튼한 면역성이 확실하다면 감기든 독감이든 겁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한결같이 "백신맞아라 그 후에는 약도 없더라" 하는 격이니

과장인지 엄살인지 진정한 약함인지 모호합니다.

 여하한, 먹고 마시기 참좋은 시대가, 신앙 핍박없는 시대가, 교회는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멋진 예배당신앙이 십자가복음을 결여시켰고 풍요한 목사생활이 십자가의 길된 목회이기 보담 '목사질'로

전락시킨 것 같습니다.

이쯤해서 우리 모두는 밖이 아닌 안을 보면 좋겠습니다.

망원경이나 선글라스로 보는 풍경이 아니라 돋보기라도 꺼내 들고 안을 봐야겠습니다.

문제는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 삼단보다 더 무서운 적과 공격은 스스로의 붕괴 아닐까요?

옛로마의 멸망이 그랬답니다.

더듬어 보면 교단확장을 위한 많은 목사 양성이, 교회가 많게 되었고 이 교회많음이,신앙부실되었으며

결국 세상의 원성도 듣게 된 듯 합니다.

중형교회 이상의 교회면 뭣하나요? 오래믿는 중직자면 뭣하나요?

이단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었야지 지는데 무슨 소용있나요? 왜 중형교회 이상일까요? 왜 중직자들일까요?

왜 이들이 대상일까요? 이들이 위장하거나 공격하기 쉽다고 여겼기 때문일텐데,

혹 믿음의 내용이 부실하거나,교회나 목사에 대한 불만은 아닐까요?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 나름 짐작하는 것은 교회나 목사에 대한 불만은 교회를 옮기는 구실은 될지언

정 교리가 전혀 다른 이단에 빠질 수가 없다는 진실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명합니다.

중직일수록, 열심 제직일수록, 저들의 목표가 되어 교회안에서 조차 경계를 해야할 위험(?) 신자라면,

믿음의 내용이 확실하지 못한, 부실의 터위에 세움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닌가요?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요? 첫째는 본인이지만 목사의 직무유기도 큽니다.

가르치지 않은, 돌보지 못한 책임,,, 있습니다.

주님의 책망이 떠오릅니다.

"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트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이 탓에 우리의 모습이 '죽쑤어 개주는' 격으로 실컨 공들여 이단께 진상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교회의 원본은 '사도행전교회'라고 믿습니다.

작아도 성령을 모신 만큼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이 성령으로 위엄있어 유대교와 로마와 철학과 싸울 수 있는 '담대한 교회'였고

마침내 이겨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 '영광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류의 안디옥교회는 세상으로 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지요.

사도행전 교회와 현대의 교회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들의 1000만의 성도가,20만 교회,10만 목사가 작은가요? 문제는 양이 아닌 질에 있다고 봅니다.

10만의 이단에 놀라고 겁먹는 신앙은 공동묘지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죽은 자가 늘어 공동묘지가 커지는 것을 부흥이라 하지 않듯이 이제는 우리들의 부흥을 달리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가 선배목사들에게 배워야 할 대표적인 것은, 성경을 믿고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릎목회'이고 청빈은 '옵션'이었습니다.

자연 밖의일 보단 하나님과 목양에 전념할 수 있었지요.

우리 이 경건과 이 충성을 잃고 있지 않은지요?

주의 양들이 병들거나 잃는 이유는 시대 탓이 아닌 목사의 직무태만일 겁니다.

뭐든 그렇지 않나요? 직무태만은 곧 직무유기인 것을, 주님없는 성장방법만 구사하니,

하나님께 충성하기 보단 교인위주의 인기전략과 전술이 병폐를 키웠고 온갖일에 나서 바쁨이

심각성에 무지했나 봅니다.

목사님, 화나지 않습니까?

짧은 우리의 기독교 역사라지만 지금처럼 목사가 욕먹고 대리운전하고 교회가 무시당하고

이단때문에 놀라고 교회당이 경매되고 여러 기도회는 문닫고 등 좀 힘들어도,

큰교회의 목사가 되기 보담 바른 십자가위의 신앙토대에서 내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제자합시다.

기도와 기도회가 살아야 하고 목사가 회심의 장본인되어 설교가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제발 목사가 주의 일 한다면서 감투따르지 말고 여하한의 사고도 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국회의원도 능력위주가 아닌 도덕성을 볼만큼 사회가 성숙해졌으니 교회도 그렇지 않겠나요?

목사를 능가할 교회 없고,목사만큼의 교인이 되기 때문이지요.

동네 교회당이 간판 없어진 것에 대한 소감이 길어졌습니다.

언제가 이 교회도 땅사면서 은혜라고 했겠지요?   입당하면서는 주가 함께 하신다고 고무되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떨지요? 이 교회당에 장차 뭐가 들어 올까요? 절이나 이단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우리가 믿는 예수,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믿게 됩니다.

목사와 교회의 당면한 여러 문제와 위기는 과도기적 성장통이라 여겨집니다.

아이는 병치레하면서 자라고 꽃은 흔들리며 피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고, 옆을 보면 탄식이 나옵니다.

"비난하라" 하심이 아니라 "깨달아라" "기도하라" "근신하라" "각근히 행하라" 하심으로 여깁니다.

우리안에 계신 주님이,그럼에도 우리모두의 소망일테니 미래가 있습니다.

뵙기를 고대합니다.


겔36: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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