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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들을 만나본지 족히 수년이 되었습니다.
목사 친구들과도 가치가 달라 총회가 갈리는 바람에
그나마 멀어졌습니다.
자연 만나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찾는이도 찾을이도 아니 일도 줄어졌습니다.
심심해졌지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가 살아 온 모양입니다.
옳은 길 가보겠다고 하여 자초한 길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살이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재미를 구하지 않은 탓입니다.
사람을 따르지 않은 탓입니다.
또한 산사람에게 외로움은 필연적 요소이기에
그런대로 그러거니합니다.
혼자의 생활이 익숙합니다.
잘 지냅니다.
나름의 맛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타협하지 않는것도 좋습니다.
바쁘거나 피곤치 않은것도 좋습니다.
세상살이가 다 바람을 잡으려하는 것과
역시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음도 압니다.
그렇습니다.
허무살이입니다.
내가 어떤들 세상의 변화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심의 축을 나에게서 떠나 옮겼습니다.
사람에게서도 떠났습니다.
주님께로
천국으로
아니 아직은 옮기는 중이 맞을겁니다.
그래요. 뭐든 마음먹기이기에 이 마음으로 행복을 찾고
가치를 얻고 힘을 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홀로인 것 같아도 그럼에도 주님이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안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나 가는 길이 못난 길이라 할 수도 있고
찾는 이가 적은 협착한 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만
뭐라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만큼 익숙해 진것만은 사실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모세가 생애의 위대했을 때는 궁궐의 왕자때도 아니요
그 백성의 지도자 때도 아닌 장인의 양치기였을 때임을,
광야의 가시떨기 나무 앞이었던 때였음을,
이때 찾아오신 주님을 뵈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세는 아니지만
그 광야는 아니지만
그 가시떨기나무는 없지만
주님은 여상하시기에
찾아주실 은혜를 고대하면서
서성이다가 혹은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나 가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결코 녹록치 않은 길이지만 가던, 가야 할 길이기에 갑니다.
행여 아니 찾아주시면 어찌하나 할적도 더러 있지만
아니 찾아주셔도 그럼에도 주님은 신실하신 줄 믿기에
내 연약한 믿음에 변개가 없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나를 누구는 "포기하지 마"로 격려하지만
나의 힘은 내가 아닌 위로부터 내리우신 주의 힘이랍니다.
오직 그 은총만이 기필코 사력을 이루도록 하실겁니다.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목사 친구들과도 가치가 달라 총회가 갈리는 바람에
그나마 멀어졌습니다.
자연 만나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찾는이도 찾을이도 아니 일도 줄어졌습니다.
심심해졌지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가 살아 온 모양입니다.
옳은 길 가보겠다고 하여 자초한 길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살이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재미를 구하지 않은 탓입니다.
사람을 따르지 않은 탓입니다.
또한 산사람에게 외로움은 필연적 요소이기에
그런대로 그러거니합니다.
혼자의 생활이 익숙합니다.
잘 지냅니다.
나름의 맛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타협하지 않는것도 좋습니다.
바쁘거나 피곤치 않은것도 좋습니다.
세상살이가 다 바람을 잡으려하는 것과
역시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음도 압니다.
그렇습니다.
허무살이입니다.
내가 어떤들 세상의 변화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심의 축을 나에게서 떠나 옮겼습니다.
사람에게서도 떠났습니다.
주님께로
천국으로
아니 아직은 옮기는 중이 맞을겁니다.
그래요. 뭐든 마음먹기이기에 이 마음으로 행복을 찾고
가치를 얻고 힘을 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홀로인 것 같아도 그럼에도 주님이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안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나 가는 길이 못난 길이라 할 수도 있고
찾는 이가 적은 협착한 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만
뭐라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만큼 익숙해 진것만은 사실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모세가 생애의 위대했을 때는 궁궐의 왕자때도 아니요
그 백성의 지도자 때도 아닌 장인의 양치기였을 때임을,
광야의 가시떨기 나무 앞이었던 때였음을,
이때 찾아오신 주님을 뵈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세는 아니지만
그 광야는 아니지만
그 가시떨기나무는 없지만
주님은 여상하시기에
찾아주실 은혜를 고대하면서
서성이다가 혹은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나 가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결코 녹록치 않은 길이지만 가던, 가야 할 길이기에 갑니다.
행여 아니 찾아주시면 어찌하나 할적도 더러 있지만
아니 찾아주셔도 그럼에도 주님은 신실하신 줄 믿기에
내 연약한 믿음에 변개가 없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나를 누구는 "포기하지 마"로 격려하지만
나의 힘은 내가 아닌 위로부터 내리우신 주의 힘이랍니다.
오직 그 은총만이 기필코 사력을 이루도록 하실겁니다.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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