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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6-17 21:48 조회 4,8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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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난관에 봉착하면 SOS를 보냅니다.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기도와 간구가 그렇고
내민 팔,
외침,
눈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때 상황을 간파합니다.
사랑있는 사람은 구조에 나섭니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SOS는 절실했다가 약해졌다가
마침내 그쳐집니다.

우리나라가 풍전등화같은 위기에 있을때
고종황제는 헤이그에 SOS밀사를 보냈었고
6.25때에는 UN군이 돕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없습니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이기에 SOS도 나누어야 합니다.

이때 명심할 것은,
받은이는 은혜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적반하장의 대표격이기에 신뢰를 잃었습니다.

반면 수혜자는 생색를 내면 않됩니다.
욕먹기 쉽상됩니다.
특별히, 돕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비난은 금물입니다.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평생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상황에서
여러모양의 SOS가 보내옵니다.
처지와 방식은 달라도 "나좀 도와 주세요"입니다.
단한번의 도움이 그의 전체를 살리는가 하면
더러는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으로 한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SOS, 나역시 최근에 보내기도 했고 또 받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SOS를 보내는 신세이고 보니
어쩌다 받는 절실한 필요요청을 외면못해,
아니 듣기만 해도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만 끙끙거리며 몇날을 누워지내기도 합니다.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지만 SOS도 정답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나랏님도 구제는 다 못한다"했으리요.
그러기에 성도의 몫이 되었나 봅니다.

작은 위로가,
내 온기가, 주저앉은 누구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왜 그런 건데"도 곤란합니다.
"그 다음은 어찌 할건데"도 곤란합니다.
"얼마나 힘들었나"가 옳습니다.
마다해서는 않됩니다.
사랑강물의 흐름이 막히고 내기도와
장래의 터가 아름답지 못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여북할까"를 생각하고
"이때를 위함이라"고 여긴다면
SOS는 피차에게 정녕 색다른 복입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누군가를
보듬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무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흙이 그렇고
작은 풀잎을 위해 바람막이가 되어 준
나무가 그렇고
텃밭의 상추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가 그렇다

남을 위해
내 마음을 조금 내어 준
나도 참으로 행복하다

어머니는 늘
이런 행복이 제일이라고
하셨다

행복한 일/노원호(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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