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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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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7-22 22:21 조회 3,3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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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은 어떤 일에 대한 '부담감'이라면, 소명은 어떤 일에 대한 부담은 물론
'주의 부르심'이기에 비슷해도 성격이 좀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일반적으로 사명자입니다.
부모로써 자식을 잘 키우는 일이나 국민으로써 정의 사회구현을 이루는 일,
또는 성도로써 주의 나라가 임하도록 사모하며 기도하는 일 등,

그러나 이런 일에 소명자는 적습니다.
부담감 이상이어야 되며 훈련도 받으며 은사도 임해야 되는데, 전문가이지만
굳이 그것만이 아닌, 주의 신과 마음과 연합도 해야 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자기 민족의 재판관이 되려 했던 일은 민족에게 부담을 가진
사명자로써 였다면, 훗날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사양중에 바로 앞에
선 일은 비로써 소명자가 되어서입니다.

사명이나 소명은 아주 주관적입니다.
문제는 사명을 소명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명은 자신이 무엇을 한다고 하는 반면, 소명은 주께서 그를 통해서 이루워 내시기에
자연 결과가 다르며, 사명에는 실패가 있다면 소명에는 실수는 있어도 실패가 없고,
사명자는 혹 돌아설 수 있어도 사명자는 기필코 섭니다.

계절로 말한다면 초봄이 있고 늦봄이 있습니다.
같은 봄이지만 초봄은 새순이 나고 꽃봉우리가 피는 반면 늦봄에는 꽃이 집니다.
사명도 소명도 다 부담감으로 시작되어도 그 정도가 다르기에 본인이 먼저 알고,
점차로 주변이 압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소명을 받았네" 혹은 "소명자네" 하며 자타가 공인하곤 하는데,
그러나 과연 그런가하여 살펴야 합니다.
사명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어도 소명은 자기 밖의 증거도 갖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옅은 사명을 하늘에서 온 짙은 소명으로 오판하고, 온 삶을 바쳐야 되는 냥
착각하여 가는 세월과 자기 생애를 허비하고 있지 않는지 또또 점검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모세에게 이 소명을 각인시키고자 광야 40년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날 신령적 일에 감동 좀 받았다고 해서 소명운운하지 말고, 기존의 직업이나 직장을
버리지 말고, 두고두고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사명은 시들 수 있어도 소명은 확연하며 상황도 그토록 맞추어 가 지며,
사명은 처음 설레여도 소명은 늘 두려움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사된 나나 주변의 목사들도 여전히 "과연 나는 복음의 빚진 소명자인가?" 를 묻고 또 묻는데,
이유는 단순합니다.
가는 길이, 사는 길이 아닌 날마다 죽는 길이여야 하는데, 오히려 살고자하는 바들이, 자기 안에
계속 있으며 지나온 결과들도 신통치 않기 때문입니다.

히5:5: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 얼마 전에는 벗된 목사가 "내가 목사로써 소명을 받았는지 회의가 들어요." 했습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소명받은 이들의 공통된 소감입니다.

* 그제는 타교회 여집사님이 "목사님,사명이 무엇인가요?" 하며 질의가 왔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 주변에서 사명자감이라며 띄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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