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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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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09-09 16:54 조회 3,2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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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야기

뭐든 잘주고 잘버리는 아내의 바가지에 의해,
얼추, 성역 30년쯤 되면서 책도 버렸고 오늘 아침엔 양복도 버렸다.

이 양복, 꼭 책같아 낯익어 정들었고 옷마다 사연이 있다.
그러나 입지 않기를 수년째, 옷장만 차지했어도 용기가 필요했다.
세탁해놓았기에, 언젠가 한 번은 입겠지, 아직 해지지 않았는데,
천이 좋은 것인데, 맞춤 옷인데, 했던 것들이다.

별난 내 이름 탓에 양복 윗저고리 안에 박혀있던 이름은,
행여 후진국 누군가에게 건너갔다한들 구설에 오를까 하여,
그러나 입기좋아야 겠기에 조심조심 칼로 긁어지우는 작업도 했다.

회색, 검정, 밤색, 색도 여러가지, 뒷에 양 날개튼 것, 통으로 된 것,
단추 3개짜리, 두개짜리, 예리가 넓은 것, 좁은 것, 생김도 제각기였다.
덕분에 옷장은 숨쉴 여유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양복의 유행을 거부하며 맞춤양복을 선호하고 있다.
뭐든 적당히, 오래 입기위한 나만의 꼼수이다.
양복은 목사의 근무복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올여름은 면바지 하나와 서너개의 셔츠로 지냈으니 무슨 조화인가?

지금은 필요에 의한 수요의 시대는 아니다.
신발이 해졌기에 신발을 사는 시대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보니 다양한 신발로 신발장도 넘치듯이 옷도, 양복도 그랬다.

다 멀쩡하다, 더욱이 양복은 작업복이 아니기에 빛도 바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시절에 누가 입기에는 반기지 않아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은 타박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오래 전 손봐 놓고 남방국에 가면 입어야지 했던, 그러나 한번도
입지않은 골프바지와 상표만 뗀 모자 두개도 덤으로 퇴방했다.

기성복을 취급하는 성도가 있었으니, 기성복을 얻거나 사입고,
양복점하는 성도도 있어 선물받거나 맞추어 입었던, 피차간의 호의가
그만 흔적은 사라지고 옛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둘째 이야기 2015,9,9

다른 날 새벽보다 일찍 기상했습니다.
기도하기 전이라 조용히 커피를 들고 베란다에 섰었습니다.
아직은 여명이 오기 전 이었습니다.

암쎈터에서, 밤새 고통을 달래며 병원복도에서 조요한 도시의 거리를
바라볼 뭇환우들이 생각나 연민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한 몸을 갖고 엉뚱하게 살았을,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다른 각오를 다짐 할 그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암의 수술 후, 편히 누워자지도 못한다는 친구와
안부를 물어도 대답조차 없는, 부인이 암인 선배를 헤아려 축복했습니다.

연이어 독일, 헝가리, 영국으로, 망명인지 난민인지 일자리 찾기인지,
여하한 고향산천을 떠나 자유와 미래를 찾아 떠난 그 '절실민'들을 위한
축복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오는 여명이 그쪽에선 석양이 될 수도 있기에,

고후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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