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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1-16 16:06 조회 3,2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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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                2015,11,12

금번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선거 승리에서 인간승리도 봅니다.

남편의 장례와 자신의 노벨 평화상 수상식도 참석 못한,
군부로 말미암은 가택 연금이 15년이었다니, 가히 알만 합니다.
그녀의 지난 세월은 민주화를 향한 투쟁과 위기의 열망이었지만,
그녀는 미얀마의 산 인동초였습니다.

이번 선거승리로 정권은 교체되며 그녀는 미얀마 민주화의 초석을 다질 것입니다.
이는 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발전만이 아니라 세계 민주화와 인류 발전에도 기여한 것입니다.
가녀린 한 여인의 희생적 투쟁과 옳은 가치관이, 또한 이와 같은 국민들의 염원이 모아져
뒤틀린 역사의 물꼬를 돌려 새 역사의 지평을 연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우선은 사회주의 국가와 저소득국가에서 부터 발생해야 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다른 것 같아도 결국 쌍둥이인 만큼,
정치의 발전은, 경제는 물론 인권 향상을 시켜,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여기에 누가 수치 여사일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수치 여사처럼 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런 곳을 주목하며 후원해야 합니다.
인권이 소성되고 행복이 조성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나라의 도래로써,
좀 이상적이고 좀 더디긴해도 그러나 실현 가능의 나라이기에,
합당한 인재양성 교육에 지원하고, 건강한 미래투자에 후원하며,  
튼튼할 힘줄을 엮는 지지에 갈채를 보태야 할 것입니다.


이발소에서                       2015,11,16

이발을 하는데 금번 프랑스가 받은 IS테러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이발사는 "우리 나라가 저런 테러 제거에 적극적이질 말아야 해요.
저놈들이 우리도 테러할 수 있어서요.~" 했고, 염색하던 옆 영감도 맞장구쳤습니다.
" 그래요. 그럴 필요없지요, 우리는 중간에만 서있으면 되지요."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이익과 관계와 정의에 혼란이 왔기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들의 말은, 일견 맞는 말이며, 조심스런 반응인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만 알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려는 보신주의는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두가 이런 처세라면 어떨까요? 평화는 요원합니다.
모두가 자기 희생을 두려워 한다면 어떨까요? 관계와 정의는발전할 수 없습니다.

마침, 뉴스는 이 테러에 대한 우리 대통령의 모외교장에서의 발언도 소개했는데,
"~ 국제적인 암적존재~" 로 규탄했습니다.
대통령의 규탄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이미 암적 존재임은 세계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저질러 온 만행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암을 제거하지 않고 몸 안에 그냥 놔두어도 좋다는식의 일반 시민의식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안일함과 당장과 자신만 아는 이익 최고주의이기에,
암을 키워 병을 만들게 되고 결국 죽음이라는 큰사고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왔습니다.
" 됫박으로 막을 것 말로 막는다." 속담이 반증합니다.

비슷한 예로, 인질 납치조직에 대해서는 여하한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국제적 원칙은,
모든 국가가 동일하며 단호합니다.
자국민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타협은 또 다른 납치와 다른 인질범을 양성하기에, 모두가 거절하고 있습니다.
옳은 처사입니다.

문득 윤봉길, 유관순, 안중근과 같은 선혈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이들이 자기 보신주의에 빠졌더라면 어땠을까요?
일제의 총검 앞에 국민들이 겁먹고 투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지금껏 해방은 없었을 것입니다.

불의는 타협하면 안 됩니다.
겁먹고 뒷걸음 쳐도 안 됩니다.
전체와 함께한다 할 때 앞장서지 못해도, 빠지면 안 됩니다. 
특히 우리는 외국이 참여해 준 특혜를 입은 국가이고, 이 피흘림으로 평화와 안정을 일구었고,
이 기반에서 발전을 이룩했기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암적요소를 제거하는데,
이익이나 관계를 중시하여 소극적이기 보다, 정의구현을 위해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목침지뢰 도발에서 국민적 결연함과 합의를 보여줌으로 우리의 평화를 지켜낸 것 처럼,
국제사회의 평화지킴도, 여하한 참여해서 확실히 해야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성난 군중들이 자국민 몇사람을 처형했습니다.
처형당할 때, 이들은 억을하다며 자신들의 무죄를 외쳤답니다.
"우리는 아무짓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성난 군중들은 답했습니다.
"그것이 너희들이 죽을 죄다, 조국이 위태했을 때 어찌 국민으로써 아무짓도 않할 수 있었는가?"
의미심장한 지적 아닌가요?

짐승들도 위기가 닥치면 싸우고 자기들 끼리 연대해서 돕습니다.
하물며 선량한 양민들이 무참히 죽고, 다치는 일상이 반복되며,
공포에 눌려 사는 일이 증가하는 이때에,
남의집 일이라고 해서, 나만 괜찮으면 무방하다며, 자칫 저들이 공격할까 하여 지레 두려워
침묵하고 적당히 외면할 수 있겠나요?

국제사회가 점점 좁아지고, 얼키고 설킨 것들이 많아 이해 타산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아군과 적군이 명확한 사안에서 불의한 범죄는, 악의 축은, 암적요소는,
단호히 단죄하는데 함께해야 합니다. 
개인의 오지랖은 실속 없어도, 국가의 오지랖은 실속 있다고 여겨지기에
오지랖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14: 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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