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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11-01 17:45 조회 2,7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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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회는 정교분리가 원칙이라지만, 교회는 협의의 정치,즉 인종차별에 관한 마틴루터 킹 목사의 대항,

곧 공동의 선을 위한 노력과 정의와 부패와 인권 침해에 대한 저항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획득과 행사를 의미하는 광의의 정치, 즉 정당정치에는 참여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종종 특정 정당만 무조건 지지하거나 아님 집권여당만 지지하여 광의의 정치, 즉 정당정치에는

간접 참여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협의의 정치에 무심한 것은 유감이다.


지금 우리 나라는 대학생, 교수, 노동자, 시민들 까지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거리 투쟁을 하고 있다.

반정부 투쟁이 아닐덴테 어찌 교회는 지금껏  침묵하고 있을까?

과거 일제에 굴복하여 천황숭배를 총회가 가결했었다.

4,19 때에는 어땠는가? 정권의 편에 섰었다. 유신반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큰 과오였다.


언제나 교회는 세상의 빛이기에 속도성 보다 방향성이 확실해야 한다.

잘못하면 책망하고 잘하면 격려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그때 교회가 참 고마웠다는, 힘이 되었다는, 혹은 깨달았다는 역사적 평가를 얻을 수 있다.

기도만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만 믿는다? 그것은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빛으로의 포기이다.


만약,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먼저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흑인 마틴루터 킹 목사 보다 어느 백인목사가 인종차별을 대항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민주주의는 더 발전했을 것이다.

일제에 순복하지 않은 총회라면 어땠을까? 4.19 와 유신반대에 교회가 적극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물론 기도는 이  모든 일에 우선적이다.

그러나 더 나은 제도와 시대와 국가를 만드는 일에는 교회는 소극적이면 안 된다. 


우리는 아래 말씀을 착각한다.

롬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리라


무조건적인 굴복이라면 아합왕에게 불복종했던 엘리야, 엘리사는 잘못된 신앙 지도자가 된다.

동방요배를 거절한 주기철 목사님을 왜 순교자라 하는가?

공산당과 싸웠던 성도들의 신앙을 왜 본받아야 하는가?


진리의 신앙보다, 자신의 비굴함을 합리화 시킬 구실의 말씀은 아닌가?

국가조찬기도회도 필요하다.

거기의 참석을 영광인냥 여기는 모습도 이해한다.

국가를 위한 기도가 있다면, 국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도 기도한다면,

또한 거리 투쟁에 잠잠하지 말아야 한다.

옳으면 지지하고 잘 못되었으면 멈추게 해야 한다.

개교회가 나서기 어려우니 교회원로들이 지혜를 모으고 한마음 한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어쩌랴, 사회적 문제는 세상일(?)이기에 관심없고, 오직 구원의(?)일인 감투와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한다며, 아직도 교회의 대표적 단체가 양분된 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

목소리 내기가 어렵다.


오늘 심방중에 집사님은 " 세상이 아주 어수선하네요. 옛날에는 이런 경우 교회가 통성으로

기도하곤 했는데,, 요즘은 없어요." 이 말에 미안했지만  " 없는게 아니라 좀 작을뿐이지요." 답했다.


이런 시국에 교회가 어찌 잠잠하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더러는 " 왜 부담을 지우느냐" 하고,

혹은 "잠잠히 계시라" 한다.


프랑스가 영국과 전쟁을 끝낸 후, 프랑스의 산동네 주민들이 한 여인을 세워놓고,

머리를 깍고 수치를 주자 여인은 억울하다며  " 내가 무슨 잘못했나요? 난 가만히 있었어요." 외쳤다.

그러나 동네 주민들은 그녀의 죄를 지적했다. " 당신의 죄는 바로 그거야 조국이 위험했을때 가만히 있었던 거,,"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 나라가 임하기를 사모한다.

그러나 내 교회당안에서의 부흥만 갈망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 나라에 주님이 계시다면 어떠실까? 양복보단 청바지를 입으시고, 성전보다는 거리에서 온수라도

나누실 듯하고, 공장마다 다니시면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수고 많아요, 든든하게 드세요." 하시면서,

쵸코파이도 나누시고, 착취하고 갑질하는 사장들을 책망하시고,  밤이면 교회당에서 밤새워 기도하실 듯 하다.

그렇지 않은가? 제자도는 이것이 아닐까?


암5:23~24)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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