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 십자가의 도
페이지 정보
본문
2004년 11월 2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1장 18절 - 25절
제 목 : “십자가의 도”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러시아 출신 대문호 「토스토 에프스키」의 생애입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청년 때에 아버지가 암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암살범을 처형하고자 하다가 자신이 죄인 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수송열차에 짐처럼 실려져 가던 중 어느 간이역에서 한 부인이 성경책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그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에게 행복이 찾아왔는데,
첫 번째는 처형장에서 황제의 특명으로 구사일생되었고,
두 번째는 신앙적 소설 「죄와 벌」을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한 부인의 작은 전도행위가 한 청년의 생명은 물론 뭇 소설의 영향을 전 세계에 미치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복음이
1. 미련하게 보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모든 사람이 아닌, 전도를 하지 않거나 전도를 받고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존재로 더욱 발달해서 보여야만 믿습니다.
그러기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합니다.
이들에게 2000년 전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십자가의 도가 믿어질리 만무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체를 미련하게 보며 전도를 가소롭게 여기곤 합니다.
이들에게는 이러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런 일입니다.
이와 비슷한 오늘의 통계가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들이 고학력일수록 기독교를 경시한다는 것입니다.
자연 교회나 목사도 불신하고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십자가의 도가 이해되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 죽음의 대속과 부활을 어떻게 논리로 증명 받을 수 있습니까?
◦ 또한 성령님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습니까?
◦ 신유의 역사를 어떤 계기가 측정할 수 있습니까?
언젠가 TV에서 실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유은사자의 기도할 때 손을 측정하여 무슨 파가 나오는가? 했지만,
결국 아무런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예수님을 믿을 때야 비로소 증명 받을 수 있습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불신과 믿음의 경계이고, 유기된 자와 택한 자의 구별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 성도
우리가 누구입니까?
과거에는 복음에 관한한 미련한 것으로 여겼던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라고 할 만한 증거를 지닌 사람입니다.
① 하나님의 능력이라 함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실을 예수님의 사실 속에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의 지혜라 함은,
죄는 죽어 장사되고 사람은 살려서 의인되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이셨습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이런 사람은 사람 앞에서 잠잠할 수 없습니다.
① 자랑합니다.
이 자랑이 크면 클수록 반사적으로 대상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어릴 때 새 고무신이나 새 운동화가 생기면
그날 밤에 일어나서도 신어보고
그 다음날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나의 자랑! 무엇이냐? 가 그 사람을 보여줍니다.
◦ 먹고 노는 것이면, 유아기적 모습입니다.
◦ 외모적인 것이라면, 청소년적 모습입니다.
◦ 생활적인 것이라면, 장년기적 모습입니다.
◦ 오직 예수님이라면, 영적모습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참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문, 학벌, 로마시민권, 바리새파 중에 가장 엄격한 파 출신 등...
그때는 십자가의 도를 어리석은 이치로 알고 반대하고 교회와 전도자를 잡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도의 중심되시는 예수님을 뵈온 후에는 자기의 자랑은 배설로 여기고 오직 예수 자랑만 하게 된 것입니다.
② 부담을 갖게 됩니다.
소위 소명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 일로 늙어도 신학교에 들어가고
이 일로 오지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③ 결국 죽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랑하고픈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부담을 갖고 있습니까?
어디에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주 안에서의 자랑은 전도입니다.
주 안에서의 부담은 헌신입니다.
주 안에서의 죽음은 순교입니다.
앞서 토스토에프스키에게 성경을 전해준 여인도 주 자랑과 부담을 가졌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또 변화된 토스토에프스키 역시 같은 자랑과 같은 부담이 있었기에 「죄와 벌」이란 글로써 예수님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3. 변하지 않는 것
변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 있습니다.
① 「사람」입니다.
불신자는 여전히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으며 십자가의 도에 관한한 미련하게 여깁니다.
반면,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믿고 고백할 것입니다.
② 또 다른 변하지 않는 분은 하나님이신 만큼 「미련한」전도를 통해서만 구원하실 것입니다.
4. 역할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성도가 침묵하면 십자가의 도나 전도를 미련하게 여기는 모습이고,
결국 세상은 「십자가의 도」와 「구원」의 은혜는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① 성숙한 인격으로 도를 증명
예수님 주변에는 「무리」와 「제자」가 있었습니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무리」이고,
떠날 수 없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요 6:66-68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나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제자들에게만 마지막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마 28:1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자리를 채우는 무리가 아닌 너희와 같은 제자를 재생산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러기 위해선 자신부터 성숙한 인격으로 변신해야 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달라진 모습, 나은 모습으로 십자가의 도가 증명 될 수 있습니다.
② 파수꾼의 사명으로 도를 증명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는 영적 사명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 명령에 의한 파수꾼 사명을 갖고 최선을 다할 때 역사는 일어납니다.
제발, 나 혼자 조용히 믿는 것으로 만족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벙어리가 아니라 「말장이」라는 지탄을 받아야 됩니다.
③ 제사장의 직분으로 도를 증명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중보자입니다.
외침이 많은 이스라엘은 엘리야, 엘리사 시대에는 주변국이 침공을 못했습니다.
중보자의 기도 위력 때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우리에게는 능력의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위함의 직책이 주어졌습니다.
이 나라의 안전과 미래도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교회의 발전과 부흥도 거룩한 손을 드는 우리의 기도에 있습니다.
쉬지 않는 중보자!
우리여야 합니다.
- 이전글[2004년설교] 신앙 결산 05.12.01
- 다음글[2004년설교] 열린 예수 05.12.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