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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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누가복음 1장 26절 - 38절
제 목 : “마리아”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사람들의 이름에는 여러 사람들의 기대는 물론 그 시대를 반영해 줍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인들에게는 「자」돌림이 많았습니다.
왜정 시대의 영향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순 한글이름이 번지고 있습니다.
1) 마리아
고대 유대인들의 이름인 경우
신앙과 삶에 대해서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고통, 애통이라는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6명의 마리아가 나옵니다.
① 막달라 마리아
귀신들려 비참하게 살았던 여인이지만, 변화되어 훗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만난 영광의 여인입니다.
②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일찍이 치마 바람을 일으킨 여인입니다.
마 20:21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③ 나사로와 마르다 형제 마리아가 있습니다.
주의 발 앞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잘 듣던 여인입니다.
④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습니다.
오순절 날 모두가 성령 받도록 자신의 집을 공개한 여인입니다.
⑤ 로마서 16:5를 보면 로마 교회에서 많이 수고한 마리아가 나옵니다.
⑥ 본문의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2) 동정녀 마리아
이렇듯 모든 마리아 여인들이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단연코 큰 은혜를 입은 여인은 누구일까요?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을 세운 어머니도 위대하다면,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키운 여인이야 말로 가장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마리아의 무엇이 이토록 큰 은혜를 받을 만 했을까요?
동정녀이기에?
정혼한 여자이기에?
마리아 이었기에?
① 잘못된 견해
먼저 마리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천주교의 경우,
지금까지 마리아를 신격화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를 무흠, 무죄한 여인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즉, 무흠 무죄한 조건을 예수님의 잉태조건으로 간주 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기도가 있고 마리아께 예배도 합니다.
이는 큰 잘못입니다.
이것이 천주교가 기독교가 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기도와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또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4:10) ~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 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과 인생과의 중재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롬4:25~5:1)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특별히 마리아는 예수님 탄생 후
요셉과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낳아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비천한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훌륭할 수는 있어도
신은 아닙니다.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구원 받을 존재요
역시 은혜로만 살 수 있는 여인입니다.
② 그렇다면 마리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큰 은혜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며 이 여인에게 훌륭한 점은 남다른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눅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3) 큰 믿음
마리아의 큰 믿음은 어떻게 증명되나요?
① 절대복종,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편안할지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니라」
이때 마리아는 정혼한 몸입니다.
그런데 정혼자와 아무런 상관없는 아기를 잉태하고 낳는다니?
놀라고 당혹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요 사실이라는 앞에 더 이상 이유를 대지 않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했습니다.
이러한 절대복종의 믿음을 사르밧 과부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과부 역시 구차한 형편 때문에 죽고자 하는 심정이었지만 엘리야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씀 앞에 「아멘」하며 즉각 순종하여
아들 먹이고자 했던 양식으로 엘리야를 공궤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복종!
위대한 믿음의 진수입니다.
큰 기적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 믿음의 사람들로 기독교는 맥을 이어왔고 확장되어 왔습니다.
* 가나 잔치집의 하인들,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워라!
이유가 없었습니다.
* 나귀를 내어 드린 마부
주가 쓰시겠다 하라,
모두가 명심해야 할 사안입니다.
오늘날 기적을 바라지만 그리고 큰 은혜는 사모하지만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믿어도 똑똑하게 믿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일단은 모든 것이 이해되어야 하고
* 육하원칙에 맞아 떨어져야 되고
* 또 자신에게 무엇이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계산해 보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은혜의 때는 지나가고
하나님은 다른 사람으로 동역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하십니까?
순종 하십시오 「제사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니면 복종이라도 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 쓰시는 사람은
* 똑똑 하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 잔꾀의 대가가 아닙니다.
* 말 내세우는 사람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내 뜻과 달라도
내 뜻 앞세우지 않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조 집사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업가인데
자신의 집을 지을 때 옆에 자신의 집 같은
집을 지어 선교사 객사로 무료 봉사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외국에서 귀국하는 선교사들이 묵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알고
자신의 집을 지을 때 「감동 받은 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오피스텔을 지어 월세를 받아
선교사를 공궤할 수 있으련만
처음 감동대로 순종했답니다.
그날 저는 그 집의 식탁에서 축복했었습니다.
② 시련 감당
마리아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서 큰 존귀를 얻은 장본인입니다.
눅 1:48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남다른 큰 고통도 감내했던 여인입니다.
◦ 2000년 전에 정혼한 여인이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키우는 동안 주변에서 당할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 핏덩어리된 아기를 안고 애굽으로 피난 가야할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 공생애는 어땠습니까?
예수님의 모함과 시기는 대단했습니다.
◦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죽는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아야 하니 어땠을까요?
어느 여인이 이 고통을 겪었을까요?
어느 어머니가 이 고통을 좋다고 할까요?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했습니다.
4) 큰 은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은혜라는 개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형통만 있지 않습니다.
곤고도 있습니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믿음의 우리 시야가 트여져야 합니다.
진정한 은혜란 내가 바라는 것을 물량적이나 물질적으로 받는 것 보담,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내가 들어있고 내가 소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자신이 쓰이고 있음을 그녀는 발견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 이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내게 맞추기 보담은 내가 맞추도록 되어 있어 바른 기독교적 「신앙생활」 이 됩니다.
결 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으로 덕을 얻고자 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으로 인한 고통이라도 감수하고자 했습니까?
주석가 「윌리엄, 바클레이」는 하나님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포지션이 아닌 그가 지금 어떤 정신과 마음으로 살고 있나? 하는 마인드에 관심을 두신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을 사용하시기 전에 그녀의 마음을 먼저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으로 인한 덕만 보고자한다면 잘못 찾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고통도 감내하겠다! 하는 믿음의 자세가 앞서야 마리아다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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