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기도와 금식 > 설교말씀

기도와 금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6-04-04 00:01 조회 1,950회 댓글 0건

본문

일 시: 2006/4/2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마17:14~21

어느 목사님 댁이
앵무새를 키웠습니다
말 배운 앵무새는
보는 사람마다 '기도합시다'하곤 했습니다

그 교회의 장로님도 앵무새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앵무새는 장로님 내외를 닮아 '사랑해요
쪽!'하곤 했던것입니다

교인 보기 창피한 장로님은 그 앵무새를
목사님 댁으로 시집보냈습니다
장로님댁 앵무새가 목사님 댁으로 오던 날
목사님 댁 앵무새가 뭐라고 했을까요?
'기도합시다'할 것 같았지만
'주여 응답주심을 감사합니다'했답니다

1)기도응답
무슨 얘기인가요?
앵무새도 응답 받았다면
우리는 더욱 응답 받아야 됩니다
지난 2 주간의 기도 제목인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선물이요
우리에겐 기도 응답되어야 됩니다

①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응답없음이 나옵니다
귀신들려 간질하는 청년을 고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땠습니까?
제자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17: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주님은 이 권능, 이 권세의 차이를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현대는 믿음없는 시대입니다
눅18:8)~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교회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가 적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나 성도가 믿음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빨빠진 호랑이나
날개 꺽인 독수리나
코 궤인 황소 격이 된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권능 잃어 버린 삼손에게서
그 비참성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열은 있으되 빛이 없거나
아니면 빛은 있으나 열이 없는 경우인데
어떤 것이든 참 열도 참 빛도 아닌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실세라고 하지 않고
허세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실세였다면
제자들은 허세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실세였다면
현대교회는 허세인것입니다

이 실세만 있다면
이 믿음만 있다면
주님처럼,귀신은 물론
마17:20)~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것이 없으리라,할것입니다
왜냐하면
막16:18)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그렇다면 응답과 능력과 권세가 없는
가짜 믿음은 어떤것일까요?
약2:19~20)네가 하나님은 한 분 이신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약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니라

즉 신학박사중에 예수 부정하는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지식은 있어도 믿음이 없는 경우이기에
예배자도 아니고 전도자도 아니고 기도자도
못됩니다

교수는 할 수 있을지언정 영적이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형이상도,형이하도 아닙니다
역동적입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메세지 입니다

☞잠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세상이 성도에게 향하는 지적입니다

☞올라가자 이기리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 없는 10족장에게
깨우쳤던 말씀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님은 온 교회를 향해서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으며

이 말씀을 따라 생애 전체를 전도자로 살았던
사도요한은
요1서3: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며
역동적이어야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행동이라고 해서
다 기독교는 아닙니다

행동의 기초가 믿음의 근거해야 합니다
약2: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믿음의 비결
더 나은 비결을 원하십니까?
정금 된 믿음을 사모하십니까?
①말씀 연구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했는데 이는 진리입니다

말씀의 기초가 없으면 환난,시험때에
꺾이웁니다

많은 이단이나 거짓교사들이 왜 등장 할 수
있었습니까?
체험 위주로만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단이나 거짓교사들의 특징은 소위 열심 소유자들
아닙니까?
그러나 말씀 보다는 체험쪽으로만
그 열심히 이끄는 대로 치우쳤기 때문에
결국은 광명의 천사! 의의 일꾼 같아도
마귀의 하수인이 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옛 전도관의 박태선 교주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②성령 받아야 합니다
모든 성령은 성령님으로 감동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 성경이 예수님을 증명하고 있듯이
성령의 참 저자인 성령을 받으면
주님에 대한 믿음이 옵니다

이 성령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자들의 경우
성령받기 전에는 두려워 떨었지만
그후 성령 받았을 때는 담대한 사람이
되어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예수님과 예수님에 관하여 더욱 바른 믿음과
자세를 갖게 됩니다

이렇듯 말씀과 성령
우리 믿음의 두 날개이기도 하고
우리 신앙 생활에 두 바퀴나 두 기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라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켰던 것이고
그래서 주님은 성령 받으라! 하시며
숨을 내 쉬기도 했던 것입니다


3)금식과 기도
이제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격발제!
성령 기름부음의 촉진제! 역활입니다
우리말 성경의 본문구절은'없음'이라고 했지만
다른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런유? 무엇인가요?
귀신을 쫒아 낼 수 있는 권능,권세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을 말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신앙의 두 날개가
비상 할 수 있는 힘!
아니면 우리 신앙생활에
두 바퀴나 두 기둥으로써 탄력을 받거나
지탱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기도요 금식 인것입니다

①기도는 하늘을 향해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면

②금식은 내 안에서 미묘하게 범죄하도록
작용하는 죄의 세력을 분쇄시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네 금식은
단순히 밥 굶는 행위가 아니잖습니까
이 일은 세상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금식은 곡기를 끊는데서 더 나아가
주변의 관계 개선과
내 마음의 치료까지 요청합니다
사58:6)~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이니겠느냐?

우리에게도 분노도 있고 슬픔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후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한 감정들이 우리 기도 장애가
됩니다

기도로써 아무리 천국을 침노하여도
금식으로써 이 모든 결박이 끊어지지 않으면
헛 수고가 됩니다

주님도 이 본을 보이기 위해서
40일동안 금식 하였고
안디옥 교회는 이토록 금식하며
주를 섬길 때에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배 아파서, 살찔까봐, 때 놓쳐서
음식 없어서 않먹거나 못 먹거나 하는 것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유감되게 옛 바리새인들은
이 기도와 금식을 본질에서 벗어나
자신을 들어내는 과시화 했기에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기도와금식을
요즘은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른 기도와 금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능력회복,기도응답,좋은 믿음!
다 하나로 통합니다 물론 기도와 금식에서 얻습니다
오해하지마십시오
☞금식이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를 쫒는 능력이 아닙니다
나를 고치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 보게
만드는 경건입니다

후배 목사는 40일 금식을 한후
몸이 망가져서 목회를 중단했습니다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금식했기 때문입니다

장기금식은 준비해야 하지만
단기금식은 생활 중에 종종 할 수있습니다

기도와 금식!
함께 행해야 하는 경건 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