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설교] 날마다 감사
페이지 정보
본문
2004년 10월 3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말씀 : 시편 107편 1-9절
제 목 : “날마다 감사”
설 교 자 : 예용범 목사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감사는 “덕목에 속하는 일이 아니고 본질에 속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 없듯이
감사 없는 신앙생활은 없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이 애창하는 곡을 아시나요?
찬송가 405장 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인데,
우리 신앙의 감사 감격을 잘 웅변해 줍니다.
1) 감사의 때
언제 감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현실이 위기라고 합니다.
특별히 크던 작던 사업하시는 분들의 한결 같은 발언은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라고 합니다.
또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예측하는 미래도 어둡습니다.
무슨 재미가 있어야 밝게 살 수 있고, 무슨 감사 건덕지가 있어야 감사가 나올 텐데... 하곤 합니다.
이처럼 암울한 우리 환경에 비추어 보면 오늘 드리는 추수감사 예배는 맥 빠진 예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주 어려운 시련 후에 쓰인 시 입니다.
바벨론 포로 갔다 온 후에 썼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
온갖 고초를 겪는 생활
그래서 피폐해진 현실입니다.
이쯤 되면 생각만 해도 북 받쳐 오르는 분노가 있을 법한데..
시편 기자는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시편 기자의 그러한 영적 안목만 있다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때에 있습니까?
곤란한 지경에 있습니까?
감사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받은 복을 세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위기의 때에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음을 발견하십시오.
지난 목요일 저녁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몸살이 왔던 것입니다.
꼬박 하루를 앓아누웠습니다.
◦ 아픈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 성하지 못할 몸을 갖고 아픈 사람도 있을 테고
◦ 기약 없는 치료에 청춘과 한 생애를 바친 사람도 생각났습니다.
잊고 있던 아픈 이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 일깨워 주심에 감사했고,
◦ 사지가 멀쩡함에 감사했고,
◦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인 저에게 목회자인 사랑과 긍휼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구원 받은 성도라면 특별한 절기나 어떤 이유가 되어서만 감사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 여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기에 「범사에 감사」하는 별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감사
우리 신앙의 최고 경배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감사의 우선 감사 대상도 하나님이십니다.
시 107:1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구소련이 공산화로써 극성을 부릴 때 한 정치 수용소에서 응급환자가 생겼습니다.
급하게 수술하지 않으면 환자는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용소 당국은 대수롭지 않게 환자를 방치 했습니다.
마침 「보리스」라는 외과 의사가 함께 있게 되어 응급환자를 수술했습니다.
그리고 밤새워 환자 곁에서 간병하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다음날 보리스는 허락 없는 수술을 했다는 죄목으로 곧 처형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응급환자를 죽게 하시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죽게 하실까? 하는 의문과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수년 후에 서서히 나타났습니다.
수술 후 살아 난 그가 「이반 테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책을 써서 소련의 잔악상을 폭로했습니다.
그가 누굴까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인자와 선하심을 베푸셨습니다.
◦ 내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장 나타날 수도 있지만,
서서히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 내게 직접적 일수도 있고,
우리에게 간접적일 수도 있습니다.
◦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신 것도
◦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증거입니다.
결국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시 107: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즉,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 영광 밖에 없습니다.
3) 날마다 감사
기독교인이 어떻게 하면 날마다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날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심하면 주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가 물 속에 빠진 결과가 됩니다.
①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절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다른 말씀으로
사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책임지고 인도하시마! 하신 뜻입니다.
6-7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엄포로 인도하시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② 의롭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데 있어서 (왜?)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기에 불의한 길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이유가 있다면
◦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롭게 인도하시며
◦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다운 방법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왜 편안하게 인도하시다가 갑자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 몹니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시는 하나님
단 것만 먹이지 않고,
쓴 것만 먹이지 않고,
밤과 낮이 있는 지혜로 인도하십니다.
④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독특한 원칙이 있는데
곧 끝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도 포기란 없습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사도바울은 이 모든 하나님을 가리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결 론)
감사할 줄 모른다면 온전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신령한 기독교인은 더욱 아닙니다.
명심하십시오.
감사가 없으면 원망과 불평만 남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든지 불평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영혼이 성령님 안에서 살아 있고,
믿음이 예수님 안에서 살아 있다면
세상과 나는 변해도
감사는 날마다 고백 될 수 있습니다.
- 이전글[2004년설교] 양심의 증거 05.12.01
- 다음글[2004년설교] 나의 힘 05.12.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