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찾아오신 하나님 > 설교말씀

찾아오신 하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5-25 20:29 조회 1,315회 댓글 0건

본문

어느 기자가 등산가에게 “산에 왜 오르냐”고 물으니

“산이 거기 있어서”랍니다.

아무리 유능한 등산가라도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산을 찾아야 합니다.

산이 등산가를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상한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드려 만든 회막이,

세워지기 전에 모세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결코 작은 물량이 아니기에 의문이 듭니다.

왜 모세가 가지 않았을까?

왜 불합리속에서 회막을 가지고 왔을까?

 

1) 임하는 나라

주님이 가르켜 주신 기도를 생각해 봅시다.

그 중 “나라의 임하옵시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가 오기를 기원합니다”는 가르침인데

무슨 나라를 바랍니까?

성도가 구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나라하면 국토만 의미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필리핀은 중국과 국토분쟁에 휩싸였습니다.

작은 섬이지만 어느 국가의 국토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기에

심각하게 다툽니다.

일본과 중국은 체면을 고사하고 억지라도 부립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주권자의 통치력이 미치는 곳입니다.

나라마다 대사를 파견합니다.

그 대사가 상대국가의 도시위에 대사관을 세워 주재합니다만

그 곳이 대사를 파견한 주권자의 통치력이

미치기에 작은 그 나라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일본 대사관은 일본이고

중국대사관은 중국인만큼

자기 나라의 깃발을 펄럭이며

망명자들이 그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도

치외법국이 되어서 끌어 내지 못합니다.

 

비슷한 예로 공항에는 보세구역이 있습니다.

여기는 어느 나라의 법도 미치지 못합니다.

자기나라에서는 이미 출국했고

상대 나라의 경우는 아직 입국하지 않았기에

자유지대입니다.

 

실제 이곳에서 수년간 머문 여행객이 있어

영화화 되었습니다.

떠나온 본국이 망함으로써 입국하고자 하는 나라에서

입국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국도 없어졌기에 되돌아갈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도하라”셨던 임하는 나라는 무엇인가요?

국토보다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심입니다.

 

그 후 우리 주님의 재림으로 완전해진

하나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위에서 비로써

세워지게 됩니다.

이렇듯 임하는 나라가 있으면 천국이고

임하는 나라가 없으면 지옥인 셈입니다.

 

2) 회막

회막은 성막이라고도 합니다.

모이는 천막, 거룩한 천막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설계를 주어 모세에게 제작을 명령하셨고

모세는 그 명령을 받들어 그 백성들로 하여금

제작한 ‘구약의 이동식예배당’입니다.

 

둘러치는 휘장이 있고 그 안에 큰 천막이 있고

그 천막 안에 여러 기구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금, 은 , 놋으로 제작했고

어떤 것은 가죽, 천으로 덮어씌우도록 했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다 제각각입니다.

 

내용과 모양 하나하나가 편리따라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니 이상한 것은

이 회막을 모세에게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모세가 가지 않았을까요?

 

첫째 의미는) 일반적으로, 완성되었기에

모세에게 보여주는 완성보고를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의미도 있습니다.

출39:42~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축복하였더라.

 

그러나 그 의미외에는 없을까요?

왜 모세 한 사람이 가서 보면 될 것을

왜 많은 사람이 크고 무거운 회막을 모세에게 가지고 왔을까요?

 

진짜 의미는) 은혜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양이 하나님나라의 특성이고 임하는 나라의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출애굽을 했나요?

이들이 성막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십계명과 각종 제사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연구결과인가요?

의견조율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셨습니다.

 

이 일은 내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전도와 믿음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믿음은 어디서 왔습니까?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어찌 오셨습니까?

만맥성이 요청했나요?

 

제자들은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찾아가 부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도 찾아가 살리셨고

수가 성 여인도 삭개오도 찾아가셔서 만나셨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유비가 제갈량을 3번 찾아가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위 ‘삼고초려’라고 합니다.

 

여기에 해석이 많습니다.

유비가 훌륭하다.

아니다 제갈량의 지략이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제갈량이 지략으로써 유비가

자신을 3번이나 찾아오도록 유도하여

유비의 덕을 더 높이었다.등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세상을 찾아오심은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준 것과 다릅니다.

이해가 아닌 무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위함이었습니다.

 

이 무조건적인 찾아주심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의 애씀공력이 함께 할 때에

빌3:10~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인생 목적과 삶의 목표와 자세가 결정됩니다.

 

3) 신앙유형

신앙에는 2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유형인데

애씀은 있으나 결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킵니다.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한 유형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는 합법적 신앙입니다.

 

문제는 우리 신앙이 이 찾아주심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더 알고 더 붙잡고 해야 할 텐데

그만 은혜를 당연시 여기고 오히려 터부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생활에서 찾아본다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했으면

그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구하며 순종해야 하는데

내 뜻에 맞지 않으면, 맞춰달라고 때를 씁니다.

이는 “나는 여호와의 목자시니‘가 됩니다.

 

또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되시니” 했으면

실제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더 붙들려하고 다른 것을 소망합니다.

 

이러한 모순으로 교회는 힘을 잃고

기도회는 ‘삭막회’가 되고 있으며

영성없는 성도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는 나라’입니다.

이미 임했고 계속 임합니다.

이 나라를 더욱 침노해야 합니다.

부자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와 여러 애씀이 있듯이

이 모든 것을 드려서라도 매진해야 합니다.

주님의 경고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최고의 가치는 주님이요 주의 나라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 안에서 회막을 세워가는 일입니다.

 

훗날 세워진 회막에 만백성이 나가서

각종 제사를 드리는 일이 말해줍니다.

회막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