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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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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9-03 18:00 조회 1,4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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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주변에 욕쟁이 할머니가 있음을 듣습니다

어느 식당의 할머니가 그렇고 어디의 누가 그렇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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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욕쟁이 목사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 욕도 보통욕으로 ‘개자식아’ 한다면,

또한 그 대상이 예배 오는 성도들을 향한다면 어떨까요?

 

세상이든 교회든 목사가 미쳤다 하며 설교는 외면하고

목사는 내 쫒김을 받을겁니다

 

그러나 실제 이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옛 광야교회의 세례요한과 당시의 성도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반대의 일이 일어 났습니다

눅3: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3: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눅3: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1) 상황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다는 선지자가 거친 욕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세례 받으러 오는 이들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떠나지 않고

세례는 물론 선지자의 책망까지 귀를 기울였을까요?

 

여러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1.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일 것이다

세례요한이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고 봅니까?

책망받은 무리, 세리, 군인들도 다 당시의 엘리트입니다

 

2. 책망들을 짓을 했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무리, 세리, 군인들입니다

이들이 책망들을만 했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노인들이 공경을 받지 못합니다

젊은이들의 공경부족도 있지만

노인들이 나이 값을 못 하는 경우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 중 차량사고 사기범도 많고

어릴 때 버릇 버리지 못한 소매치기도 많고

최근에는 “짐을 들어달라” “길을 가르쳐 달라”하며

유괴행동책도 많습니다

다 욕먹어 싼 노인들입니다

그러나 세례받으러 온 이들은 이런 류가 아닙니다

 

3.특수상황이 있을 것이다

무슨 특수상황이 있어 보입니까?

영화나 연극하는 상황인가요?

아닙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회개외침’을 듣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으러 온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왜 극렬히 책망했나요?

저가 욕쟁이가 아니라

눅1: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위는 세례요한에 대한 천사의 예고인데

1.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2.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즉 자리보존이나 삯을 위하거나 듣는 귀를 만족케

하기 위한 마음과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갖고 아버지 마음처럼

저들을 회개하는 목적성취에 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답니다

능력과 실력은 좋은데 성실하거나 열정있거나 정직한

사람이 없답니다

‘인물기근시대’입니다

물질은 풍요로운데 인물이 없어 각종 제도와 정책과

위원회만 증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중심과 사랑으로 훈육한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반발은커녕 존경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용이나 상습적 폭행을 일삼으니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직장인도 그렇습니다

직장을 내 직장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더 나은 곳 있으면 떠나가고자 합니다

마침내 직장도 그렇게 대합니다

 

심지어는 성직자조차도 그렇기에 감동이 없습니다

웅변이나 감언이설로 설득하려니

역효과만 날뿐입니다

 

이는 시대탓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내 탓입니다

내가 모순덩어리이기에,

입술로는 쓴 약을 원하다면서

실제는 단약을 더 좋아한 이유입니다

이런 나, 이런 시대를 만들고

인물기근 시대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세례요한이 나타나서 동일하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 반응이 자신을, 시대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요즘은 식당음식이 답니다

고추장 볶음도 냉면도 피자도 답니다

손님입맛 맞추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점점 더 단 맛에 길들여져 결국 쓴 맛은 잊게되겠지요

 

2) 회개하는 시대

그러나 세례요한의 시대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하는

중심의 사람이 있었고,

그 외침이 쓴맛을 주어도 좋은 약같을 줄 알고 받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누가 등떠밀거나 수당주거나 인기연예인이 공연하지

않았는데도 도시에서 광야의 강가로 나온 겁니다

밥먹고 할 일 없어서가 아니라

비록 로마에 압제된 식민지 시대임에도

그들 마음속에는 죄의 대한 탄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죄가 관영한 시대였을까요?

그래서 ‘회개’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고통이나 위로나 풍성이 필요 없는 태평시대였을까요?

아니요, 지금보다 의식주 교육문제가 더 고통스러웠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죄 회개에 관심을 갖은 반면

지금은 더 죄악이 관영한데도 관심을 끄고 삽니다

차이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 믿음의 차이입니다

현대는 지식이 많습니다

정보도 많이 저장하고 삽니다

 

스티븐 잡스의 퇴임, 미국 빌보드 차트에 k팝 차트가 생긴 것,

‘김정일이 언제 평양가는지’등

 

그럼에도 꼭 알아야 할 ‘하나님, 죄 심판’은 모릅니다

아니 외면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귀신 문화가 일찍이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귀신문화가 산당, 제사, 전통으로 자리잡아

하나님을 모르고 큽니다

 

2.빛을 어둠이 싫어하듯, 하나님, 죄를 듣기 싫어하는 세상은 물론

교회에서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 버리므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자연 경건의 능력은 상실되고 경건의 모양만 발달합니다

가게나 집안의 성구를 보면 ‘창대케 되리라’가 주종을 이룰 뿐

‘회개하라’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례요한이 있던 시대,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례받으러 나오던 시대가

현대보다 더 은혜의 시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관심, 섭리가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은혜가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방임, 방치아니겠습니까?

 

책망받은 이들은 “어떻게 하리이까?” 하는 자책이 있었다면

요즘은 이조차 없습니다

다행입니까? 불행입니까? 불행입니다

사는 길이 그쳐졌기 때문입니다

 

3) 세례요한의 책망

선지자의 책망은 선지자의 단순한 화가 아닙니다

주님의 책망이요

회개할 의인들의 격려요

주의 택한 백성들의 인도하심이요 세우심입니다

 

세례요한의 책망내용을 보십시오

“세례만 받으라”가 아닌 더 이상을 주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입니다

 

이 책망을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제발 교회당만 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제발 예배만 드리지 말고

제발 기도만 하지 말고

제발 목사질, 집사질만 하지 말고

실제로

요1서3:18)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결론) 정의, 인애, 살아있는 신앙덕목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면 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의 사람들이기에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회개가 곧 복입니다

그 열매는 정의, 인애 더 나아가 정결입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될 때 비로서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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