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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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광야길’을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뜻과 상관없이 광야길로 인도하시고
그 길은 괴롭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기필코 은혜의 여건이 된다는 요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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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그 삶을 나타내셨습니다
마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의 광야 생활, 이상한 생활 아닙니까?
그것도 성령에 의한 생활
그것도 혹독한 시험
들짐승과 함께 하는 고난의 생활
그러나 천사들의 수종을 받는 놀라운 은혜생활이기도 합니다
1) 잘못된 신앙
기독교의 잘못된 신앙이 있습니다
진리인 냥 깊숙이 들어온 비진리입니다
첫째는 기복신앙입니다 아니 기복주의입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과연 진리입니까?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손종하면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둘째는 긍정의 신앙입니다
교회 부흥은 교회의 주인이신 주의 뜻으로 이루어지기 보단
긍정의 힘에 의해서 이루워 진다는 사고방식인데
긍정신앙은 기복신앙과 사뭇 다릅니다
기복신앙은 기도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며
기도해도 복이 오지 않으면 ‘기도가 부족하다든지’
하여 그것으로 끝납니다만
긍정신앙은 소극적 기도에 비해 적극적으로 일을
이루게 함으로 폐해가 상대적으로 큽니다
즉 은행융자를 받아 어마어마한 교회당을 짓고
각종 편의시설과 교인 수송차량을 운행하고
장학금, 구제, 복지등 모든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하면 반드시 많은 교인들이 와서
초대형 교회를 이룰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효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나 진리순종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이룬 신앙과 교회는 사기이고
사상누각이 됩니다
벌써 그 폐해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도산, 기도회의 폐지등
정치에만 포퓰리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의무보다 권리를 누린다는 장비빛은, 결국은 없고
망합니다
진리의 신앙은 ‘광야 신앙’입니다
고난도 고통도 참은혜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알았기에
병이 떠나질 않았지만 오히려 기뻐하며
약한데서 강함이라며 진술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도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후8:1) 형제들아 하나님께 마케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기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이상한 현상, 신기한 가치,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기독교인입니다
지난 주간에 두 분의 목사님이 뉴스가 되었습니다
병약한 중에도 사도행전적 목회를 하다 별세하신
하 목사님, 그의 빈소에 대통령 부부까지 친히
문상을 했습니다
약함이라는 광야가, 망함이 아니라
의존할수록, 강함이 된다는 것을 믿었기에
병약한 온 삶을, 하나님 나라 확장에 불사르게 된 것입니다
그 곳 교인들은 행복했을 겁니다
긴 삶보다 짧은 그의 삶은 더욱 아름답지요
세례요한처럼,
다른 목사는 기독교 은행을 설립한다고 하여
사기 행각을 벌인 목사입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사랑하여 아간처럼
자신도, 남도 망하게 했습니다
기독교의 수치요
목사의 망신이지요
그 일에 투자한 성도들은 죄없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신앙목표가 현재에만 머물고
목적이 돈에만 있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 신앙은 죽습니다
기독교의 부흥은 광야기에 일어납니다만
쇠퇴기는 풍부와 부요 속에서 쇠락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광야기는 주님을 향합니다만
쇠퇴기는 풍부와 부요 속에서 안일해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며
끝까지 견디는 자를 구원을 주십니다
2) 광야에서 외치라
본문을 보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외치고자 한다면 도시로 가야하는데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무엇인가요?
물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사역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광야는 ‘듣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독신앙의 시금석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보다
왜 하느냐가 시금석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지어다 했습니다
목사의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듣고 순종함이 있어야지
불경청의 불손종은, 열심과 열정은 가져도 소용없습니다
세례요한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쳐라‘하심에 순종했습니다
이게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그를 평가한다면 그는 이 때를 위해 존재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광야에서 외쳤는데 도시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막1:5) 온 유대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기기한 사건 아닙니까?순종했더니,결과는
하나님이 듣게 하시고 나오게 하시고 자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 광야에서도 외치라 함을 따라 외치는 것
곧 진리와 함께 하는 일입니다
3) 광야의 소리
구약의 선지자중 누굴 존경합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남자로써 이상적인 여인이 있을 수 있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다 배제된 체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았습니다
영적 간음한 이스라엘에게 메시지용으로 사용하신 까닭입니다
이 일에 호세아는 순종했습니다
삶을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것입니다
내 것을 포기하고 주의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광야 신앙’이고 그 성도가 ‘광야의 소리’가 됩니다
결론) 주의 음성을 듣기를 갈망합니까?
막1:6)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순결함, 단순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물질 중심이 아니리 주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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