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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7-08 23:08 조회 1,381회 댓글 0건

본문

전 세계인의 기독교 인구는 약 30%입니다

이들의 신앙을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덕을 보는 신앙

*예수의 덕을 세우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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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예수를 이용하는 신앙이라면

후자는, 예수를 위하는 신앙입니다

어떤 신앙이 많을까요?

 

1) 순교신앙

우리 교회의 홈피를 보면 첫 창 마지막 단계의

‘순교자적 신앙’이 나옵니다

신앙 목표입니다

목회 소원입니다

교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즉 무엇을 믿느냐? 의 과정을 지난 후

예수를 믿는 신앙은, 증거하는 신앙이 되며

그 최고가 순교까지 이르는 신앙인 것입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5:12)기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천주교에는 두 종류의 성인이 있습니다

순교성인 - 핍박받아 죽은 순교인

완덕성인 -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함을 이루다 죽은 신앙인

 

기독교는 순교자만 있고 완덕신앙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핍박받은 순교자는 적색순교,

완덕한 신앙을 이룬 신앙은 흰색순교로 볼 수 있는데

어렵기는 적색순교가 아닌 흰색순교일 겁니다

 

시대의 변천으로 적색순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색순교는 늘어야 됩니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를 이용하는 신앙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고 주기철 목사님은, 적색 순교자입니다

 

일본 식민지 시절, 천황숭배를 우상숭배로 간주하여

거부함으로써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순교자의, 고난의, 처형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이 크고 건강한 체구와 자유로운 가정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심하고 병약했으며 80세 넘은 노모와

토끼같은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교우들도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 말씀이 꽂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해서 독자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 하셨던 본문 말씀입니다

그는 독자 이삭이 내게는 무엇일까를 성찰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하나님께 드렸기에 아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반적 의미로, 독자하면 귀한 것 정도로 간주했지만

주 목사님은 자신의 가장 취약점으로 받았습니다

즉, 드리기 힘든 것, 어려운 것으로 깨닫고

병약한 몸으로 드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는 옥고와 고문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 내 생명을 빨리 거두어 주십시오”

기도하기도 했었습니다

 

2) 순교신앙의 기업

주님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되도다”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관계에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렸던, 아브라함이 복있고

주기철 목사님도 복있습니다

 

만약 주기철 목사님이 당시에 살고자 했다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죽은 자로써 잊혀져 있을 겁니다

 

복된 것이 무엇인가요?

1.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아름다운 것은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기철 목사에겐 ‘순교자’가 붙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국기독교 역사와 순교자기념관에서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드린 마리아가

영원토록 그 이름이 기념되도록 하신 이치입니다

 

2. 신앙의 계승을 이루었습니다

무엇이든 3대 4대를 계승한다면 ‘명품가’입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의 가문은 공군의 명품가가 되었습니다

아들 김 신부터 시작해서 친손자 외손자까지

다 공군장교로 임관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가문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 그의 손자 목사등

아름답습니다, 신앙이 기업이 됩니다

 

3.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순교한 목사님의 집안에 무슨 재산이 있었겠습니까?

막내 아들되는 주광조 장로는 불우하게 자랐습니다

1950~80년대까지 한국교회는 순교자는 물론

그 후손을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그는 부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사업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4. 후손이 잘 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는 목사지만 장신대의 교수입니다

수년전 평생 석좌 교수가 되었습니다

 

3) 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본능적으로 살고자 합니다

여러 시위를 보면 ‘결사항쟁’등의 현수막을 보는데

이는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절규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방법은 모릅니다

세상 방법은, 살고자 한다면 ‘나부터 살자’입니다

주님방법은, 죽고자 한다면 산다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누구든지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느니라”

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뻐합니까? 아니

무엇을 믿습니까?

 

살고자만 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비참하거나 비굴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죽고 영혼이 죽고 후손이 죽습니다

남는 것은 후회만 있을 뿐입니다

 

반면 죽고자 한다면 진리에 속합니다

진리는 진실이기에 담대합니다

한 때는 죽은 것 같아도, 전체가 다 살아납니다

결국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기만 바라는 신앙은 육신을 도모하는 신앙입니다

여기에는 진보가 없습니다

영혼부터 모든 것이 서서히 사막화되어 갑니다

유럽교회가 그 실상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부요와 풍부속에서 즐기는 신앙이 되고 보니

교회는 죽고 유럽이 병들고 있습니다

미국교회도 마찬가지요

우리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죽음도 감수하는 교회나 신앙인은

삶의 ‘터닝 포인트’를 일굽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으르 드렸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왜 독자 이삭을 주문하셨나요?

잔인하신가요?

치매걸렸나요?

이성적이고 불신적일수록 이 하나님을 믿지 못 합니다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신앙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이를 초월하여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1.실제 이삭은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2.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양을 보았습니다.

3.훗날 예루살렘 성전 터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믿음은 바로 이런 겁니다

순교자적 신앙은 바로 이런 겁니다

 

마귀는 여전히 현혹시킵니다

이기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위한 고난을 자원하십시오

주님도 고난 후에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히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그 고난 중에는

극심한 궁핍 중에도 드리는 예물과(가난한 과부의 헌금)

먼 거리임에도 출석하는 마음과(에디오피아 내시)

불편한 자리의 예배도 있습니다(마가의 다락방)

우리와 같습니다.그럼에도

다시 한 번 번제물이 되도록 다짐하십시오

은혜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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