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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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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4-11 15:38 조회 1,439회 댓글 0건

본문

제 목:절대적 사랑

본 문:요1서4:7~21

일 자:2011년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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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했지만

실제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써“하나님은 사랑하시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세상 중, 으뜸되는 사랑의 대상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아담은 물론

모든 세상이 마귀에게 넘어가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의 말이 이를 구체화 시킵니다.

눅4: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리라

 

1)예수님의 오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오심은,계속된 하나님 사랑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세상,범죄한 인생을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심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왜? 예수님이 인자로 오셔야만 했습니까?

능력부족은 아닙니다.

첫 사람 아담과 같이 되어야 새로운 족속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완전한 조건 속에서 마귀에게 참패당해, 모든 사람을

죄의노예‘가 되게 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악조건 속에서 오히려 이기셔서

왕이 되시고 믿는 사람들을 ‘은혜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셨습니다.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주님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마16: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주님께 있어 또 다른 자신이고 구원을 위한 사령탑입니다.

다른 기관이 아닌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땅위에

이루워 집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랑은 제자들을 파송합니다.

막16;15~16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위임받았던 일이기에

모세보다 더 충성하심으로 십자가위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마침내 “다 이루웠다‘하실 수 있었습니다.

 

2)역사의 반전

아담의 불순종과 타락으로 말미암았던 세상타락이

이제는 예수님으로부터 반전되었습니다.

세우신 교회는,그냥 그렇고 그런류의 기관이 아니라

엡1:23)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니라

 

즉 구원의 핵이 됩니다.

교회가 아니면 구원의 방편이 없습니다.

교회가 없으면 하나님 사랑이 실종됩니다.

성령의 내주하시는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성도는,능력의전사가 됩니다.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마귀와 그 궤계를 대항하는 첨병입니다.

엡3:70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안에서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직업이 다르고, 직임은 달라도, 긍극적인 목표는 마귀와의 싸움이며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되는 구원의 성취입니다.

 

주님과 교회와 성도에게는 여러 보장과 혜택이 주어집니다.

주님은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의 왕으로 오시며’

교회는 ‘주의 거룩한 신부되어 들림 받고’

성도 개개인은,주의 재림 시 천사들을 판단하는 존귀를 얻습니다.

 

이보다 앞서 하나님의 절대적사랑은 이 땅위에서도 ‘음부의권세 ’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그러했듯이,우리는 주님안에서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보장과 혜택은 ‘주의 의무‘와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에서 심리학교수를 지내던 ‘헨리 나웬’은

캐나다의 지적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 그들을 섬깁니다.

그는 ‘아담’이라는 장애우를 통해 주님을 보고,만지고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구원은,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히 비폭력적이며 겸손속에서 임재함을 보여 줍니다.

이런면에서 과거 십자가전쟁은 오판이고 탐욕의 수탈이고 죄악입니다.

 

우리의기도가, 우리의 교회부흥이 이러지 않기를 경계해야합니다.

‘말구유’로 오신 예수님,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 한 벌 옷을 지니신 예수님을

옳게 보고 따라야 합니다.

 

이 일은 세상과 타락한 본성이 혐오합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답니다.

이 일은 평생해야 할 거룩한 과업이기에

주님은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주문 하셨습니다.

 

이 성품과 이 모양 없이는 아무도 주를 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사랑은 겉돕니다.

 

3)긴장의 때

현재는 ‘이미’ 구원하신 구원과 ‘아직’ 이루고 있는 구원의 때입니다.

곧 ‘긴장의 때’입니다‘

 

그래서 탄식이 사무칩니다.

여전히 죄악의 관영이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이 있습니다.

교회의 부실과 미흡과 잘못도 있습니다.

 

롬5: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탄식하며 양자될 것을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결론) 뉴스를 보니 미국의 경우,일본재난과 잘못된 종교성까지 부추켜져

‘종말론’이 생겼답니다.

어떠한 쓰나미에도 견디는 선박이 인기있고,어떠한 재난에도 지켜주는

개인 대피소는 예약이 다 되었답니다.

잘못된 처신입니다.

 

이러한 경우,더 천국을 사모하며 주의 생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확실한 요새요, 반석이요, 도피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후4:8~12)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함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구체적 사랑입니다.

구원을 이룩한 큰 사랑입니다.

 

이 사랑안에서만이 절대적보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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