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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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9.8.9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막1:12~13
학생이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해선 시험을 치릅니다.
그 학생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려면 또 시험을 치릅니다.
이러한 시험이 비단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에도, 하나님앞에서도 있음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시험의 목적
세상 시험이든 신앙시험이든 시험은 실력을 가늠하는 일이 목적이지만
이 시험으로 결국 실력은 향상되기 마련입니다.
만약 시험이 없다면 어떨까요? 심신이 편하기는 할지언정 진보나 향상은 없을겁니다.
왜 고3병이 있나요?
대학입시를 위한 스트레스가 과중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이토록 스트레스를 일으키지만 그 결과 대비를 이루고 향상을 갖고와
마침내 대입이라는,취직이라는< 승진이라는 진보를 가져다 줍니다.
신앙시험도 그렇습니다.전체 감독관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관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시험관은 마귀입니다. 시험 응시자는 모든 성도입니다.
시험과목은 "거룩과 믿음과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시험은 그 성도를 괴롭게 하거나 망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성도로서 더욱 거룩하며
하나님의 뜻에 더 믿어 「순종」하는 일꾼으로 세우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2)예수님의 시험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보십시오
시험없는 종들이 없었습니다. 합격한 종들만이 쓰임 받았습니다.
이런면에서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아야 됬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은 모든 성도의 본 아닙니까?
그러므로 뭇 성도는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수록 시험은 필연적입니다.
①본문은 이때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광야입니다. 시험장소입니다.
미국의 핵 실험과 자동차의 속도시험은 네바다주에서 열립니다.
사막지대인 만큼 주변의 간섭도 받지 않을뿐더러 피해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신앙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적 광야에서 시험 받습니다.
주변에 누군가 있어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고독합니다.
또한 광야 특징은 무엇이든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고난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수종드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이는 그 시험이, 우연이 아니고 목적에 의한 만큼 안정되고
확실한 목표에 의한것임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 시작과 끝
또한 모든 시험이 그러하듯이 신앙시험에도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30년 생애동안 훈련 받으신후,
40일 시험을 받으셨고 그후 공생애 3년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모세의 경우
80년을 애굽궁궐과 광야에서 훈련 받았고 40년을 쓰임 받았지만 그 역시 시험을 받았습니다.
광야 가시떨기나무가지중에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앞에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하며
겸손의 종으로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누구냐에 따라 쓰이는 용도가 다릅니다
자연 훈련과 시험의 날수가 다릅니다.
그러나 과정은 동일합니다.
우리가 자신과 주위를 살펴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과 고통중에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상하리만큼 형통할때나 부유할때나 도시의 각종 혜택속에서 분주할때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못하다가도 광야고난속에서 확실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시험장은 ① 인생개조의 신학교는 물론 ②하나님 뵈옵는 광장도 됩니다.
다윗 목동이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음도 광야시험, 연단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철은 망치로 맞을수록 강철이 되고 금은 불속에 들어갈수록 정금이 되듯이
인생과 신앙은 광야시험을 통과 할수록"예수화"됩니다.
3)시험의 자세
이러한 시험이 누구에게는 평생에 없을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구에게는 숱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횟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광야 시험이 꼭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히12:8) 징계는 다 받은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12: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약1:12)시험을 참은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벧전1:6~7)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 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
이러한때, 시험받는 성도의 자세는 어때야 될까요?
기쁨의 참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고난과 고통을 즐기는것이나 업시 여기는 자세가 아니라
진지하지만 그후에 나타날 약속과 보장을 연상하며 인내하는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비젼을 기뻐해야 합니다.
결론) 시험이 오길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며 근신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러나 시험이 오거든 맞서야 합니다.
이 시험속히 지나가도록 나는 죽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살도록 힘써야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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