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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9-03-02 22:52 조회 1,662회 댓글 0건

본문

일 자: 2009.3.1

본 문: 막7:31~37

설 교 자: 예용범목사

최근의 일입니다.

사람많은 국수집을 갔습니다.
늘 다니면서 사람 많은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을 갖고 갔지만 맛은 별로였습니다.

그날,그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답은, 호기심과 군중심리의 작용이었을것이다...
라고 결론지었습니다.

1) 예수님과 군중
언제나 예수님 주변에는 군중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현장인 갈릴리 바닷가에만
해도 5.000명가량 되었으니
아이,부녀자까지 계수하면 더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도 귀먹고 어눌한자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난것을 보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 옆에 있다고해서
예수님을 다 믿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왜 예수님께 왔을까요?

1. 기적과 표적을 보기위한 사람들입니다.
불과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불구경,물구경,싸움구경은 좋았드랬습니다.
약장수의 원숭이 재롱도 좋았습니다.
볼거리없던 시대의 얘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무슨 볼거리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 와야 환자를 고치시고,
귀신이 떠나가는 볼거리가 있었으니
왜 모이지 않았겠습니까?.

2. 배고픔이 해결되었습니다.
GNP가 20.000불이 된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배고픔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굶는 사람이 여전히,그것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더 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 오면 당장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막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3. 말씀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대의 율법사와 랍비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권세가 있었습니다. 내용이 있었습니다.
또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기에 깨닫기가 쉬웠습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군중들은 자신들이 얻고자하는 것을 찾아
예수님께 왔을 뿐, 예수님의 목적에
따라 온 군중은 적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세상을 찾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그럼에도 군중들은 이 목적에 부합치 않고
오직 자기목적,즉 군중심리로 왔습니다.
자연,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이가
적었던 것입니다.

훗날 이 무리들이 어땠는지 아시나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하며
시위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2) 현대교회의 교인들
오늘날 교회오는 교인들은 어떨까요?
다 신자일까요?
결코 그렇치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부름의 목적에
따라 오는 참 신자보다
여러이유의 군중심리로 오는 교인들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 이들의 특징을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는것을 긍지나 자랑으로
여기기보단,어느 교회당을 다니는것을
더 큰 가치로 여깁니다.

전도해보면 어느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참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속에 담은 것을 말하고
가치있는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말하는 교회는 건물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믿는다고 말하지 못 할까요?

3) 예수만남
예수를 만나면 어떨까요?
35절)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곳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육신의 벙어리만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귀가 열려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혀의 맺힌것이 풀려 찬송,기도,전도 등이
예수중심화됩니다.

㉡ 예수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1. 시대의 유행에서 떠나야 합니다.
머리와 의복에만 유행이 있는것이 아니라
신앙,즉 기독신앙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면 뭔가 되는 듯해도
진리를 벗어 납니다.

교회의 많은 조직과 프로그램이 예수를
가리우고 있습니다.
처음 의도는 예수를 더 나타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본질은 없어지고
껍데기가 본질인냥 행세하고 있습니다.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성령님 덕이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죄와 예수님을
비추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의 은총이지
사람의 설득이나 분위기나 감동이나 자기 결단이 아닙니다.

2.군중에서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군중속에서 만나지 않았습니다.
즉 군중대 예수님의 만남이 아니라
1:1의 만남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삭개오,막달라 마리아 등이 그랬습니다.

주님이 군중을 찾아 가신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오히려 <군중을 떠나사>하는 일만
있을뿐입니다.

군중은 묘합니다.
개인이 가리워집니다.
개인이 못 할 말을 군중은 합니다.
역시 개인이 못할 행동도 군중은 합니다.

현대인들이 작은 공동체보다
큰 공동체를 선호하는것도
작은곳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큰곳에서 가리워지길 바라는
속성 때문입니다.

또 큰곳,군중심리가 작용하는데는
각종 편함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편함과 가리워짐에 만족 할련지는 몰라도
사마리아 여인이나
삭개오나
막달라 마리아처럼의 예수만남은 없고
따라서 구원도 없고 감격도 없습니다.

이 모습! 일종의 넓은길로 들어선 모습이고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격입니다.

결론) 내게 향하신 주님의 <에바다>를
듣기 위해선
군중심리와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안일에서 벗어나 1:1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곳은 지진이나 뇌성이나 폭풍우가 치는 세상이나,
광야가 아니라 세미한 주의 음성이 있는
호렙산 동굴이어야 합니다.

그런 곳이 있을까요?
이외로 많습니다.
낮은 곳을 보십시오
비천한 곳을 찾으십시오

우리는 그곳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기보단
내 주님으로 만나야 됩니다.
아니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 눈물이 있고,감사가 터지고
삶의 숭고함에 진지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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