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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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 2008 년 9월28일
본 문: 고린도전서 1장18-25절
설교자: 예용범 목사
제 목: 십자가의 도
전에 함께 신앙생활 했던 모 장로님은 대학교수입니다.
당시 그 장로님의 막내딸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습니다.
이 딸은 아빠가 학교 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친구들이 할아버지냐고 놀리기 때문이랍니다.
1) 부족한 지혜
우리에게 이런 일 없습니까?
행색이 초라한 형제를 부끄러워하고
장애를 가진 부모를 숨기기도하고 등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잠시뿐
철이 들면 무식하고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지만 역경의 세월속에
자신을 키워준 것을 감사하여 자랑스러워하고 때론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요?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부모형제에 대한 지혜가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2) 기독신앙
신앙도 그렇습니다.
불신적인 이성의 눈으로 기독교를 본다면
-미련해 보입니다.
-어리석게 보입니다.
이 고린도 편지를 썼던 시대의 상황은 헬라의 각종 철학이 발전하던 시대였습니다.
철학은 논리로 증명되어야 하고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부활신앙을 어떻게 증명하고 받아 드리겠습니까?
-현대는 천박하거나 시끄럽게 보입니다.
현대는 지성인 시대입니다.
이들의 눈에 보인 기독교는 나약한 사람들의 도피처요
말 많은 사람들의 발표장으로 비추어질 뿐입니다.
그 결과 자신도 믿지 않고 믿는 이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교회조차
거부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어 계시의 정신을 갖고 본다면 기독신앙은
-지혜중에 지혜요
-능력중에 능력이기에
인류역사상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여기에 역사의 증인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초를 세운 <바울>입니다.
믿음 전에는 율법주의였지만
믿음 후에는 사도바울이 된 것입니다.
즉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한마디로 똑똑해서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대단한 종교적 열심도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의 사람인지라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부활은 최대의 사건이었지만
그는 이성적이라 받아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함은
하나님께 향한 모독이요 예수부활을 믿는 일은 자기백성의
수치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독교를 저해하고 예수 믿는이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에게 변화가 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이는 그때 믿음의 눈을 비로소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갈1:11-12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미련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느꼈던 십자가의 도가
한 순간에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는 즉시 변화하여
훼방자요 핍박자에서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를 이성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미련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또한 어리석게 보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셨다.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지옥에서 천당으로 옮겨진다.
믿어집니까?
지성인이 믿을 만한 내용이라고 여겨집니까?
그러나 실제는 자신을 의심해야 합니다.
즉 내 자신은 완전 하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고
과연 이해되는 것만이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의 기초는 어떻게 놓였습니까?
-바다 깊은 곳의 샘물은 왜 있습니까?
알고계십니까?
이것이 한계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지혜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아닌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곧 믿음의 안목입니다.
3) 믿음의 안목
믿음의 안목을 얻기위해서는
자기부정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완전치 않다.
그리고 성경의 완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알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은 성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성경으로 믿는 일입니다.
이때 기독교를 밖에서 아닌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왜 2000년 역사 중에 허다한 사람이 믿을 수 있었을까요?
-왜 죽는 순간까지 믿었을까요?
-왜 주변사람들에게 권장할까요?
-왜 유언으로 남길까요?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 모습은 기독교 밖에서 본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렇다면 믿음의 안목으로 본 기독교는 어떨까요?
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 사함의 능력은 세상과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죄 사함을 그냥 선포하시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근거가 필요한데
곧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기에 그 죽으심에 근거하여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②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죄는 죽고 죄인은 살려야 합니다.
그 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역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그 대속을 믿는
뭇 죄인은 살아났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자랑합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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