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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6-05-28 22:23 조회 1,808회 댓글 0건

본문

설교자: 예용범 목사

일 짜: 2006.5.21

본 문: 마9:14~17)

우리나라의 복잡한 역사를 들여다 보면
재미난 사건이 많습니다

고종 때 단발령을 내리자
국민 모두가 상투 짜르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여 기피했던 일이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터라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신체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 것을 금한만큼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목숨을 건 포기요, 변신이었던것입니다

1)예수님시대
예수님 시대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시내산 율법이
최고의 법이었던 만큼
뭐든 율법대로 행해야만 인정 받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신앙, 참 신앙은 율법대로의 신앙
이어야 했습니다

예컨대
제사는 어떻게 드려야 했을까요?
정해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해진, 제사장에 의해서만
정해진, 예물인 숫양,혹은 비둘기를
정해진 방법에 잡아
정해진 순서에 의해 드려야 했으며

백성들의 쉼도
오직 정해진 안식일에만 하되
정해진 대로의 일체 노동을 삼가하고
3보이상을 움직이면 않되었던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의의를
제기했던 금식도 아무때나 하면
않되었던 것입니다

정한 금식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슥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대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하는 말씀이 증명하질 않습니까?

이 때는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서 통회자복해야 되고
그렇치 못 할 경우 침을 발라 눈물을 만들어서라도
통회자복해야만 했던것입니다

이토록 율법은 엄격한 규칙과
규정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어긋나면 죄가 되므로
*가혹한것이 율법이요
*정죄하는것이 율법이요
*죽음으로 몰고가는것이 율법입니다

분명 하나님께로 부터 온 율법인 만큼
거룩하고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왜 사망에 이르는 법이 되었을까요?
목적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에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것이라

*죄를 깨달을 율법
*죄인 됨을 제시하는 율법
*결국은 구세주 예수께 인도하도록
선생같은 율법을

사람들은 다만 지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킬 능력없고
또한 사랑도 없으니 이 율법은 무거운 계명이
되었고
결국 세월 갈 수록 해이해지고 전통만
남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질 않습니까?
3.1절,8.15등은 국가 경축일 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법대로 경축일
이기에 지켜져 옵니다만

감격이 있습니까?
감회가 옵니까?

여기에 요청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법 조항 보다 마음우선 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법은 세워지고
규칙은 지켜질 수 있습니다

율법도 그렇습니다
구원받으면 그 율법은 즐거운
율법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면 가벼운 십자가가 됩니다

마치 독립운동하고 해방을 맞이했던 이들에게
3.1절과 8.15는 남다른 기념일인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롬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29)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것이라

2)예수신앙
우리 신앙은 은혜의 감격도 모른체
구원의 감사도 잊은체
낡은 법대로
주일이면 나와서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환희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자원함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낡은 베조각 처럼
낡은 가죽부대 처럼
형식과 모양은 있으되 생명된
신축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 베조각이나
새 가죽 부대 처럼 신축성이
생명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신앙과 산 신앙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예배도 언제 어디서나
드릴 수 있습니다
음식도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딤전4:4) 하나님의 지으신 모은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그리고 무엇이나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집사님 한 분이 다녀 가셨습니다
많은 얘기중 원통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평범한 목걸이를 하고 교회를 갔더니
어느 성도가 십자가 목걸이를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생활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초월해야 합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진정한 복음은
주인과 노예를 초월했습니다
빈부와 남녀와 국경을 초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신앙의
순수한 정체성을 잃고 편협되고자 합니다
너무 내 틀 , 우리틀에 맞추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①관성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종교성이 유별나서 과거부터
불교,유교를 신봉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신앙의 의식이 여전히
우리 의식에 잠재되어 예수신앙안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 신앙은 계시된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인데, 불교의
공드림 신앙이 강조되고 있다면
곤란합니다
100일 새벽기도,
100일 보다는 기도에 의미를 둬야
됩니다 아니면 공양미 300석 처럼
많이 드림에서만 믿음을 찾는다면
이것 역시 곤란합니다

또한 우리네 예배는 유교의 제사화 되질
않았습니까?
예배는 축제입니다
부활의 기쁨을!주님 말씀의 감격을!
죄사함의 은혜를! 표현하는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②타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의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어디든 천편 일률적이고
또 무엇이든 천편 일률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다르면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교파의 다양함은 어디에 갔습니까?
각 교회의 특성은 어디 있습니까?

③고민해야 합니다
과연 오늘의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가?
과연 내 신앙은 참 복음의 신앙인가?
과연 주의 일 한다는 것이 주와 함께
하는 것인가?
과연 좁은길 간다고 하지만 실상은
넓은길 가고 있지는 않은가?를 고민애 보아야 합니다

이 타성 때문에
옳다고 여겼지만 그릇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잠14:12) 어떤 길을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 사망의 길이니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들은
자신들이 옳았다고 했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것입니다

그들이 옳았습니까?
사도바울 일행을 이단 이라고 구금했던
부류가 소위 당시의 정통이었습니다

그들은 낡은 전통과 사람의 유전을
붙들었고 복음의본질에서 벗어난 율법을
따라 했기에 죽은신앙이 된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원,이스라엘의 선생된
니고데모가 대표자 아닙니까?
거듭남을 이루지 못한 신앙!
성령를 모르는 생활!
오늘날은 없을까요?

우리가 말하는 모 이단 교회가
큰 성회를 한다는데
주제가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 이랍니다
어떻게 무엇를 전 할련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한 정통교회가 이런 신령한 주제의
성회를 이루는 것을 별반 보질 못했습니다
열심,충성,성수주일등을 강조합니다만
죄 사함, 거듭남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습니까?

크게 생각하는것일수록
크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이단 교회를 두둔함이 아닙니다
비판과 정죄에 앞서
우리의 본질과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3)자유와 방종
우리 신앙은 생베신앙이며
새부대의 새 포도주입니다
오직 주님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개혁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개혁을 이룩하는 신앙인것입니다

복음에 거하면
복음의 진보를 이루고
이 진보가 모든 개혁을 이룩합니다

그러나 이 자유가 남을 넘어지게 해서는 않됩니다
더욱이 방종할순 없습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결론) 지난 년초에 두명의 소록도 외국인 간호사들의
사랑의헌신이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20대에 소록도에 와서 50년 넘게
사랑의 종 노릇하고 고국에 돌아간것입니다
이들은 표창도 대대적인 환송도 거부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처럼 이 자유를 소록도에서
실천한 것입니다
위대한 생베조각! 훌륭한 새 가죽부대이기에!
새 포도주를 보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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