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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6-05-10 16:32 조회 1,751회 댓글 0건

본문

일 짜: 2006.04.30

설교자:예용범

본 문:막2:1~12)

거리를 다녀 보면 (임대)라고 써 붙인
문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보면 여러분은 무엇이
연상됩니까?
1)고난
저는 고난 혹은 고통이 연상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임대해 있지만
(임대)라고 써 있다면 그는 거기서
망해 나간다는 의미요
새 건물일 경우 역시 투자했지만
이자도 나오지 않고 있어 고통을 받고 있을것이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을 계약하고자 여러 건물들을
돌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고통을 여실히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한 건물 주인은 노후 대비책으로써 퇴직금으로
분양 받았지만 임대가 되질 않아 오히려
관리비 납부하기가 고통스럽다 했습니다

현재 우리 예배당 2층도 1년 넘게
공실되고 있으니 이 고통도 작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세상의 고난,고통 무엇으로 상징 될 수 있나요?
이 시대에선 임대요
본문에선 병상에 누워 있는 한 중풍 병자가
그 상징입니다

한때는 건강했을것입니다
행복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옛 이야기가
되었고 꿈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용신할 수 없는 환자요
심각한 상태이기에 상위에 누워
누군가의 힘을 필요로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고난의 이유는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고통의 정도도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경도 이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욥5:7)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그러기에 태어나는 순간 부터 울어야 되고
그 생명을 출산 할 때도 산모는 고통을
겪고, 살면서 그리고 죽은 순간까지
고난의 과정이고 고통의 연속인것입니다

여기에 두 타입이 있습니다
①수용형-소위 운명론을 믿는 부류입니다
여기에는 그릇된 신망이 크게 작용하는데
인도의 힌두교나 티벳의 불교처럼
윤회설을 믿는 경우입니다

그들은 고난을 전생의 업보탓으로 여겨
지금의 고난과 고통을 수용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계에서 더 나는 삶을
구사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②거부형-반면 거부형은,
운명은 내할 탓이다 하여
적극적으로 삶을 구사하는 부류입니다
물론 이때도 신앙은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청교도 정신은 곧 개척정신입니다

최근 팔없는 비너스라고 일컫는
영국의 엘리스 래퍼가 내한 했었습니다
양팔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예술
활동을 하며 운전 수영은 물론 숱한
장애와 편견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영국 아닌 인도나 혹은 아시아
국가의 여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선천적 장애에 붙잡혀
고난과 고통속에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만
다행히
기독교적 사고에 고무된 영국이기에
불굴의 투지가 발휘되고 있다고 여겨
집니다
믿음은 긍정성은 물론 적극성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막2: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 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2)문제이유
그렇다면 왜 세상은 고난과 고통이
있을까요?
모든 철학의 시작이고
모든 종교의 기원입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닫고자 했던
문제가 바로 이 문제 아닙니까?
왜 고난이 오고 죽음이 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답을 줍니다
롬5: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유는 죄 때문인것입니다
죄의 본 뜻은 과녁에 어긋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탈이 곧 죄며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죽음이며
그 과정에서 고난,고통이 수반될 뿐입니다

이 모양은 우리 인류 역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할 때 곧 고난,고통이
왔으며 회개 할 때는 부강했습니다

이 법칙은 한개인에게도 적용되어
비록 성군 다윗일지라도
아니 영광의 조상들일지라도
순천자는 흥하고 악천자는 망할때
바로 이 고난 ,고통이 수반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있으리라
하심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의
배도와 불신의 상태를 암시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때 고난,고통만 보고 그 문제만
해결 하고자 애씀은 근본책이 아닙니다
마치 암 덩어리를 발견했다,해서
그 덩어리만 제거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조직 밑에 있는 세포는 여전하여
계속 재발되는 이유가 되질 않습니까
렘13:23)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때
정녕 할 수 있다하더라도 곧 수치가
드러나니 근본 치유책은 아닌것입니다

3)탄식
여기에서 좌절이 오고 탄식이 나와야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하는
질문도 나와야 됩니다
찬송가343)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하도 다시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보였네
나를 구원 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죄있다 정죄하신 하나님이 죄사함을
해주시면 되기에 하나님앞에 나가야
되는것입니다

행3:19)~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

문제만 보고 두려워 마십시오
상태의 고난 고통만 피하고자 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 열매는 고난 고통일뿐입니다
뿌리는 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동물도 자기 새끼는 지킵니다
국가도 자국민은 보호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시23: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본문의 중풍병자가 주님께 오질 않았습니까?
그때 주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후 그는 유쾌하게 된 일이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문제인 병,고통인 중풍만
보신것이 아니라 죄를 보시고 근본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4)주님의 본심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애3: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렇다면 본심은 무엇일까요?
와서 죄사함 받고 행복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본심이 있으시기에
우리가 행한대로 즉시 심판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엎어지되 아주 엎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5)평강하뇨?
이 죄를 십자가 위에서 제거하신 주님의
첫번째 말씀이 무엇입니까?
평강하뇨?
그리고 계속 평강이 있을찌어다,하심의
의도하심이 무엇입니까?

죄있는 곳엔 두려움뿐이요
고난과 고통이 수반되는 곳엔 평강이 없지만
주님의 은혜가 있는 곳엔 평강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평강의 문이 열려
진줄 믿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평안하다면 소망갖을수 있잖습니까?
소망 있다면 인내 할 수
있잖습니까?

결론)더러는 이 고난과 고통을 대비하면서
돈을 쥐고 있습니다만
보십시오
그 돈을 사랑함이 일반악의 뿌리가 되어
자신을 찌르고
렘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 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붙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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