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 설교말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07-07-01 23:10 조회 1,841회 댓글 2건

본문

일 자: 2007. 6. 24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마 18:21~35

세상에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그중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말로

불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불행합니까?

용서하지 않을 경우

쓴 뿌리의 고통을 자신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중 ‘절대로 용서 못 해’라든가

아니면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면

불행은 물론 불쌍함도 단연 으뜸이 됩니다

쓴 뿌리를 뽑지 않은 체

그리고 영원히 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입니다


1) 사랑의 열매

용서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모든 신앙의 최고점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용서하심에서부터

비롯 됩니다


왜 우리를 용서 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심 까닭입니다

그 사랑의 확증은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용서를 낳고

용서는 그 용서의 정도에 따라

사랑을 웅변해줍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언제 어떠함의 용서를

받아 보았습니까? 사랑받은 것입니다

아님 누구에게 언제 어떠함의 용서를 베푸셨나요?

사랑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으로

죄 용서함 받고 더 나아가 의롭다함까지

받은 사람들이기에 용서는 우리

일상이고 상식이어야 합니다


종종 신앙을 예배당에서의 종교적

의심참여로만 생각하여 예배당 밖에서의

사랑실천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마5:23~2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야고보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약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동하는 신앙!

실천하는 믿음이 참 입니다


소년 요셉은 이복형들에게 노예로 팔리워

애굽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은 애굽으로 곡식 사러온

나그네로써 만났습니다


복수의 기회가 왔지만

복수대신 용서 했습니다


이 용서를 의심했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별세 후 여전히

복수를 두려워 할 때

오히려 요셉이 형들을 설득했습니다

창50:19)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에게 버림받고 팔리웠음을...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2) 성숙의 열매

이 용서는 언제나 성숙한 신앙!

성숙한 사랑! 성숙한 인격의 열매

가 됩니다


요셉과 형들 중 누가 큰 자 입니까?

용서 받는 자가 큰 자 입니까?

용서 하는 자가 큰 자 입니까?

요셉은 형들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용서한 큰 성숙자입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배반하여 못 박은 무리들을

향해서 저주와 독설을 퍼 붓는 대신

용서하셨습니다

눅23: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초대교회의 스테반집사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돌 맞아 죽으면서

행7:8)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잘못을 깨닫고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용서를 구한다면

참 성숙한 사람은 이렇듯 용서합니다


3) 용서가 아닌 것

그렇다면 용서 같지만

용서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1.세월지나 잊혀진 경우입니다

용서는 덮어주는 것이라면

잊혀지는 것은 지워지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시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잊혀진 것은 기회가 되면 꼭 생각됩니다

고통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2.타의적 용서일 경우입니다

뭐는 자의적일 때 의미가 더 있습니다

타의에 의한 것은 모양만 있을 뿐

의미가 없습니다


타의적 용서는 억지입니다

진심이 결여 됬기에 순간 용서는

될지언정 영원한 용서는 될 수 없습니다


4.용서의 때

이러한 용서는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없다면

용서할 수 없기에

상대방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신속히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없기에

상대방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신속히 용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용서의 대상이 있습니까?

현존하고 있습니까?

망설이지 마십시오


결론)용서는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수십년간 혹은 수년간 앙금처럼

남아 있던 마음의 상처들이 용서하는

순간 곧 치료되게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했던

아픔이 용서하면서 씻김 받았습니다

그 상처의 씻김이 방장대곡하였던

눈물인것입니다

창45:2)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댓글목록

profile_image

주은혜님의 댓글

주은혜 작성일
요셉이 그 형제자매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성공하여 그들보다 더 위에 있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_image

주은혜님의 댓글

주은혜 작성일
만일 여전히 비천한 위치에 있었다면 요셉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옛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성공을 해서 좀더 월등한 능력자가 된 뒤에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