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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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예용범 목사
제 목: 권세회복
본 문: 마28:16~20
일 자: 2008.2.3
예수님을 보는 시각이 둘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로 보느냐?
성경적으로 보느냐?
교과서에서는 한 성현으로 간주합니다만
성경은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요
보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 둘의 시각이 상이한 철학을 낳았고
동서양의 문명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1)선교
선교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을
성경대로 바꾸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120년 전
몇 명의 서양 선교사가 와서
예수님을 증거 한 후
전체 교인 수 1200만 명
교회 수 10만 교회
해외선교사 18000명
목사 약 20만을 넘는 큰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다만 이는 드러난 교회적 통계일 뿐
보이지 않는 사회저변의 의료, 교육, 봉사 등의
영향은 근대화를 이룩했고
세계화를 이루는데 까지 공헌하고 있습니다
2) 선교의 중심
선교의 중심은 계몽이나 구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장사 된 후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즉 사셨고 지금도 살아서
인류 흥망성쇠를 주장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9)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무슨 말씀입니까?
선교란 죽은 자의 유훈을 증거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죽은 자를 신봉하고
죽은 자의 유훈을 따르는 종교와 체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곳에는 무덤처럼 조용함과 시신 같은
싸늘함만 있습니다만
살아계신 하나님과 다시 사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생명력과 운동력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나고
예수님 이름의 권능과 그 보혈의 권세가
표적과 함께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종로구의 승동교회는 역사 깊은 교회입니다
초창기의 선교사가 세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정의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선교사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
고침 받아 백정들이 모이게 된 교회입니다
1907년도는 부흥의 해였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의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회개를 전국적으로
전개 시켰습니다
지금도 선교현장에는 사도행전의 기록된
여러 기적적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건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요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사건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알 수 없는 안과 적 증세로 있다가
기도받고 고침 받았습니다
어릴 땐 사건이지만
그 사건의 영향이 오늘의 목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또 수년전 중국에서 쎄미나 인도중
한 여인이 갑작스런 중풍으로 얼굴이 돌아갔습니다
저녁에 그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받은 후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이와 같은 생명력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위엄을 누리게 됩니다
헹5: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육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이 현장의 특징을 아십니까?
기쁨입니다
이 들의 특징을 아십니까?
감사입니다
이 모양을 보려면 선교하시고 선교현장에 가면 됩니다
3) 현대교회의 부족
애석하게도 현대교회는 이 기쁨과
감사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선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시쿤둥 하는 반응이 오고
외국에는 비용드니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연 위에서 주시는 기쁨과
속에서 솟구치는 감사가 없어졌습니다
생기가 없고 운동력이 저하된 것입니다
이쯤 되니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위적
기쁨과 감사를 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연출하기 시작했고
흥겨움을 더 하는 악기를 도입하며
안락한 의자와 안정 된 분의기 등으로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쁨은 애통후의 기쁨과 다른 것입니다
그 감사는 죄사함의 감사와는 다른 것입니다
현대교회는 예배당의 아름다운 장식을
걷어내고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 저편의
죽어가는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세교회를 향한 경고를 들어 보십시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우리를 향한 경고 아닙니까?
계3:15~17)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
한마디로 성전건축 이자는 월 2000만원
내면서 선교비는 200만원도 쓰지 않는
재정구조의 교회가 되다보니
주의 힘을 잃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결론) 교회는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은 목수였지만
성전 건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헐라고 하셨습니다
낡아질 것에 힘 쏟을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힘써야 된다는 교훈 아닙니까?
자기 생명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쓴 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 그칠 때 그 모든 것이 끝 납니다
그러나 귀한 생명을 자기 생명 보다
더 큰 귀중함에 드린다면
생명 그쳐도 그 열매는 남을 것입니다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를 가 보십시오
선교사는 죽었지만 그들이 생전에
만든 업적은 여전히 남아 그 열매는
물론 그 사명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눅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주님도 선교하신 것처럼 선교하고
주님이 제자 양육하신 것처럼 제자 세워야 합니다
이쯤 되면 주의 권세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항상 함께 하셔서
세상을 이기는 교회로의
위상을 지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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