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여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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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예용범 목사
일 자: 2008.3.16
본 문: 눅23:26~31
참새도 죽으면서 <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떨까요?
아니 우리 예수님은 어땠을까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형장을 향하여
가시면서 자신들을 향하여 슬피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고 하셨습니다
1)예루살렘 딸들아
먼저 울라고 하셨던 대상들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온 세상이나
전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향하여 울라
하시지 않고 오직 현재 예수님을 따르면서 울었던
소수의 여인들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마지막 자리까지 함께했던
이 여인들이야말로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며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떤 때는 표적을 보기 위해서
어떤 때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수백 혹은 수천이었습니다만
그들은 지금 저곳에 없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도망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보담
예수님의 베푼 은총을 따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예루살렘여인들은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르니
참 신앙입니다
요 8: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그렇다면 오늘의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누구일까요?
주소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예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모든 성도가 예루살렘 여인이 될 것입니다.
비록 시대는 달라도
굳이 여인이 아니더라도
이들만이 주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이제 울어야 할 대상이 나옵니다.
왜 <그의 나라와 의가> 아닌
너희 즉 자신과 자녀들 입니까?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녀는 또 다른 나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밥 주는 주인을 닯습니다
주인이 사나우면 개도 사납고
개가 잠만 자면 그 주인은 잠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요?
내가 온전한 성도가 되면
내 자식도 온전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며느리를 얻기 위해
늙은 종을 고향에 보냈습니다
이때 늙은 종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요?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그냥 종이 아니라
<경건한 종> 이었습니다
주인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를 보고 배웁니다
자식 농사의 관건은
어떤 부모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모입니까?
어떤 영향을 주는 부모입니까
부자 부모도 좋고
근면한 부모도 좋고
청렴한 부모도 훌륭합니다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경외하는 믿음의
부모만큼 좋을 수 없습니다
잠31:30~31)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아브라함 링컨은 어머니를 닮아 신앙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인 성경이 그의 교과서가 되었고
어머니와 기도하던 기도습관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백악관에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통령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부모들은
자식을 부자로만 키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 있는 자녀로 키웁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입니다
3)울라
여러분은 언제 울어 보셨습니까?
세상은 억지 웃음이라도 자주 하라고 권합니다
웃음은 묘약입니다
웃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웃기 위해선
먼저 울라고 하셨습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많이 우셨습니다
눅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주님의 울음은 다가 올 심판 앞에
멸망할 백성들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 입니다
그 백성들이 회개치 않아 멸망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내가 아퍼야 울고
내가 원통해야 울고 내가 슬퍼야 웁니다만
주님은 주님 자신이 아닌 백성을
향한 동정의 눈물이요 긍휼의 울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항하여 ‘울라’고
하셨습니까?
그 의도는 무엇입니까?
약4:8~9) 하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성도는 일반적 울음보다
이와 같은 죄악된 자기 내면을 보고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바는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향하여 탄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애통함이 있어야 됩니다
성도가 우는 이유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비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을 보고
울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날 살렸기에
감사해서 울 수 있을 뿐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결론) 성도는 주님의 관심에 눈이 가야 됩니다
여러분의 영혼 안전합니까?
과연 장차 다가 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앞에서 확실히 면죄 받았습니까?
여러분 자녀는 어떻습니까?
부모는 어떻습니까?
그 상태에 웃음이 나옵니까? 아님
눈물이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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