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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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짜: 2009.1.11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막 10:13~15
고인이신 이덕진 장로님의 얘기입니다.
그는 피난 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시발’택시를 제작,판매하셨습니다.
큰 돈을 벌어 하나님께 물질로 봉사하는데
자동차를 팔 때마다, 십일조를 ‘궤’에
넣어 그 궤째 헌금했다고 합니다.
이북에 있을 때는 젊은 장로였지만
거지 행색을 하고, 당대의 내노라하는
장로님들 댁에 동냥하여, 받은 푸대접을
교회에 소개하고, 사랑없는 장로들과
교회를 회개케 하는, 부흥에 일조하기도 했답니다.
지금 그 자녀들과 후손들은,
미국에서 의사로써 살면서,
세계 빈민을 위한 치료사업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시계추 마냥 교회당에만 오고 가는,
대충적인 교인 1000명이나 10000명보다,
온전히 헌신한 이 한분이, 그리고
그 가정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예수님과 제자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길 바라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꾸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린 아이들이기에 무가치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왜? 어린아이들을 무가치하다고 느꼈을까요?
속물근성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속물근성은 물질과 물량으로
가치를 세우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을‘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시면서’
오히려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치인 ‘영혼’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2)현대 상황
세상은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고 합니다.
세상의 가치기준인 속물근성의
만연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쯤되다 보면,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하여 삶의 목적이 되고.
자연 빚을 내어서도 명품,
심지어 ‘짝퉁’이라도 가져야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의식은 잘못된 의식입니다.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면
물질은 풍부하고, 고급화되어도
사람과 세상은 피폐하다가 결국 망합니다.
지금의 세계를 보십시오
유물론인 공산주의 몰락을 보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시장경제의 주축인 자본주의가
흔들거리지 않습니까?
이 물질가치가 어떤 모양으로든 득세하면
할수록 신앙,철학,윤리,도덕등의
정신가치는 무시되고,
오직 보이는 것, 소유하는 것만이 능사되어
판을 칩니다.
유감되게 작금의 모습입니다.
3)하나님나라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의 가치나 중요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와 의미를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인데,
곧 하나님의 통치요, 기준이요,가치입니다.
이속에는 ‘하나님은 물론, 그 말씀,
그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물과 달리, 세상을 지배하며
살라는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은
슬프게도 세상 속에서 살면 살수록 불행하고
반대로,창조하신 하나님과 살 때 더 사람답고
세상에서 얻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개나 자동차를 애지중지
하는 것 보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려주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부합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이 가치가 더욱 무시되고 있습니다.
물질의 대명사인 돈 때문에
인신매매, 매춘, 장기매매, 각종 폭력
그리고 이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학문에서는 기초학문인 철학이 도외시 당하고
의술인 경우 내과,외과 보다는
돈 잘 번다는 성형외과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 영향을 받아
회개,믿음,구원,성령충만,기도,전도
성경공부 보다는,
한 순간에 큰 성과를 본다는
수단과 기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탓에 세상이든 교회든
건물들은 웅장하고 화려해졌지만,
사랑과 인정 등은 메말라,
약하고 가난 할수록 살 수 없어
심하게 고통당하고 잇습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을 아십니까?
아프리카의 경우는 절대적 빈곤합니다.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자 곁에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적 빈곤입니다.
누가 더 불행하다고 느껴집니까?
상대적 빈곤입니다
한마디로 기술,장비,프로그램이
발전해도 발전한 만큼
소외계층은 증가하고 불행은 깊어가고
살벌함은 겹겹이 쌓여,
평화를 논해도 평화는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물질이 많으면 좋을 것이다, 했던
사람의 뜻은 관철되었다 하더라도
‘사람구원’이라는 하나님대의는
오히려 역행하여 더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4)받들어
이제 우리들의 가치는 물론
의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개를 애지중지 하거나
자동차를 떠받들거나,
땅,금,증권등을 사 모으는 일 보담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 뜻이 구현되는 일과
사람 자체를 천하보다 존중히 여기는
일을 받들어야 합니다.
즉, 높이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앞세워야 합니다.
세상은 마귀가 임금인 만큼
물질의 지배속에서 여전히 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성도는 달라야 합니다.
주님의 지배속에 살아야 됩니다.
천국민은 언제나 신본주의요
언제나 신정 정치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무엇을 생각하느냐 따라
몸이 그곳을 향 합니다.
몸이 향한 곳을 정신과 신앙이
따랐다면 이제는 고치십시오
마22: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 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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