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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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짜: 2009.1.25
설교자: 예용범목사
본 문: 행21:15~19
곧 설입니다.모두가 고향을 찾으며, 인사를 다닐 겁니다.
이때 성도도 예외는 아니기에,
성도의 인사를, 본문에서 찾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에 관하여
‘복음의 열심 있는 사람’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 관점입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진지한 사람’‘정중한 사람’혹은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타인에게 무례하게 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로마서 16장을 보면
평소의 자신을 도와준 여러 사람들에게
문안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아들같은 디모데에게도
‘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1)문안
우리는 사도바울의 신앙도, 그 복음의
열정도 배워야 되지만
그의 사회성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말세일수록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기는‘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때에
누구에게 문안 받아 보셨습니까? 아님,
누구에게 문안해 보셨습니까?
현재를 보면, 과거의 나의 살아 온 삶이 비취이고
현재를 보면, 살아야 할 내 미래가 보입니다.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그 일행과 함께
‘기꺼이 영접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전도자와 그 일행을
예루살렘 교회가 잘 맞이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영접 받을 수 있던
그 입장은, 그들의 평소 인격이요
생활이요, 신앙의 열매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절에 가서 새우젓 국물 얻어먹는 것이
평소 자기 할 탓’아닙니까?
또한 사도바울은 그 이튿날,
그 교회의 감독인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문안 했습니다.
평범한 일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문안 받지 않고
그들을‘찾아’문안한 것입니다.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신앙의 진수! 생활화!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이토록 생활과
인격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아니 미치지 않았다면. 그 신앙은
지탄 받아야 되고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잠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2) 문안의 성격
문안에도 여러 성격이 있습니다.
옛말에 ‘대감이 죽으면 문상을
않지만 그 대감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간답니다‘
이 문상은 누구를 위한 문안입니까?
대감입니까? 자신입니까?
이런 문안! 얼마나 많습니까?
좀 산다, 있다, 잘 나간다 하는
사람에게는 문정성시를 이룹니다
지난 정권 때, 법무장관을 지낸
분이 계십니다. 그 딸의 결혼식장에
무려 하객 5000명이 찾았음이 세태를 나타냅니다.
반면, 참 문안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문안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출18:6~7) 그가 모세에게 전언하되
그대의 장인 나 이드로가 그대의
아내와 그와 함께 한 그 두 아들로
더불어 그대에게 왔노라.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 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모세에게 오랜만에 장인이 찾아 왔습니다.
모세의 처자도 함께 했습니다.
모세는 이 때 처자보다
장인을 먼저 맞이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상대방을 존중한 예절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어른된, 이드로도 모세를 문안 했습니다.
3)문안의 경우
이 문안!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않함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1.바른 대상에게 해야 합니다.
문안의 대상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대감께 해야지
대감집 개에게 할 순 없잖습니까?
2.바른 때가 있습니다
한 원로목사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은퇴한 후 그 많던 인사도 전화도
편지도 딱 그치더라고,,,했습니다.
신정 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구정 때도 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반복되니, 받은 메시지가 부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사를 자주 하면 아부가 되고
지난 후에 하면 결례가 됩니다.
3. 표현이 중요 합니다.
찾아가서 뵙고 인사하는 것과,
글을 보내는 것과, 전화로 하는 것과,
누구를 대신 시키는 것 등
다 다릅니다.
마치 멀리 있을 때 인사하면
상대방이 몰라보기 쉽고
너무 가까운데서 인사하면 대드는
꼴이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4)그리스도인의 문안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의 문안이 많이 나옵니다
즉 믿음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경건이요
예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믿음 좋다고 하면서 ‘예의’가
없다면 믿음은 빵점짜리 인 셈입니다.
참 믿음은 인간성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바꾸어 줍니다.
즉, 저급에서 고급생활로 향상 시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한 10여년 전에 ‘챌ㅇㅇ’라는 기업의
사장과 학교개교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장이 학교를 세우고저 하는 이유는,
직원들을 채용해 보면
기본적인 예의, 예절이 부족하여
일본인 선생을 데려다가 가르쳤답니다.
그 후 자기의 직원들이 타 회사에 뽑혀
가는 것을 보고 예절학교를 꿈꾸게
된 것 이라고 했습니다.
문안이 별 것 입니까?
갓 쓰고, 도포 입고, 큰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여
고마우면 고맙다고,
가면 간다고, 오면 왔다고 하는
기초적 사회규범표현입니다.
왜 부모 없는 자식을 욕 했습니까?
이 기초적인 것이 부족한 까닭 아닙니까?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계셔도
가르치질 않습니다.
그 부모 역시 배우질 못 했기 때문입니다.
명심 하십시오
실력과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기초적인 예의, 예절이 없으면
인간자체가 신뢰받지 못합니다.
결론) 성도의 의무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의입니다
그 기본은 신앙고백 아닙니까?
그 성도가 사람 속에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예의는 ‘문안’입니다.
물질로 못하면 말로도 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가 1000냥을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변을 보십시오
아주 작은 이 일, 문안 잘못해서,
신뢰받지 못하고, 신임되지 않는 일,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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