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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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10.2.7
제 목: 사랑의 정도
설 교 자: 예용범 목사
본 문: 요 21:15~19
사랑을 할거야, 사랑을 할거야
사랑, 사랑, 내사랑 어화둥둥 내사랑
사랑처럼 미묘하고 복잡한 일이 있을까요?
같은 사랑일지라도 성격도 다릅니다
20대의 사랑은, 내가 좋은 사랑
30대의 사랑은, 마주보는 사랑
늙어 곧 세상을 떠날 노부부의 사랑은,
저가 좋을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어떤가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마디로 사랑의 장본인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 좋을, 참 사랑이요 큰 사랑입니다
1) 사랑의 정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문양으론 '하트'로 표현합니다
어느 분이 제게 문자를 보냈는데 빨간
하트가 담겨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문양을? 알고 보니 내 휴대폰에도 있었습니다
사랑의 실제는 무엇인가요?
관심,배려,집착,질투,희생등
사람이 이런 사랑존재 임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이
유다국을 사랑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저들의 죄악에서 구원하시려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 계속 회개를
촉구하시고 주변 강대국을 통해 자극
주시며 그래도 회개치 않으니
멸망시키시고 그 후 남은 무리를
통해 저들을 회복시키시고등
또 앞서 애굽에서 탄식하고 있던
이스라엘백성에게도 이 사랑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출3:7~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그러므로 사랑은 '관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배려'등의 행동으로 옮겨지고
마침내 최고는 '희생'까지 감수하는 등의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요1서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2)베드로의 사랑
오늘 베드로의 '사랑고백'은
사랑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커피물도 미지근함이 있고 뜨거움이
있고 아주 뜨거움있듯이
주님에 대한 사랑도, 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첫번째 제자들에게 오셔서
'네가 나를 믿느냐?하시지 않고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은 신뢰이고 신뢰는 행동이며
행동은 깊은 희생이 동반되어야
참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것 처럼
그래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했던것 같이
믿음과 사랑은 쌍둥이 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몰랐다가 비로소
터득한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의 질문에
처음에는, 쉽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관념이나 감정정도로 이해 했다면
예수님이 좋았잖아요
예수님과의 추억이 있잖아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질문은,사랑의 이상,혹은 결심으로 이해했다면
다소 이상함을 느끼며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겁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답했습니다
이제라도 결단하고 미래에서 잘하면
되리라 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질문에서 그는 무너졌습니다
사랑은, 사랑에 대한 이해나 감정
혹은 결단이 아니라 실체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을 사랑한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용하려고 한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 출세하고자 했기에,
베드로의 3번째 대답이 비로소 진실해졌습니다
요21:17)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
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달리 말하면,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고백이 아닐까요?
3) 우리 사랑
베드로의 모습에서 우리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받을 사랑을 계수합니다
새벽과 삼일기도회에 나오시던 모 권사님이
계십니다
잘 나오지 않아 전화했더니 태도가
시쿤둥했습니다 또 전화하여
"다른 교회로 가셨냐?"하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말씀인즉 "사람이 적어서,"
였습니다
사랑있는 신앙이라면 '사람적기에' 오히려 와서
기도했어야 됩니다
그러나 떠난 것은, 사랑없는 까닭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성도치고, 복음이 증거되고 확장되길
바라지 않을 성도 있나요?
교인치고, 자기 교회 발전되고 부흥되길
바라지 않을 교인 있나요?
그러나 그것뿐입니다
아무런 행동을 않합니다
이유가 많습니다 시간이 없고 형편이 않되고
리더쉽이 어떻고 등
그러나 실상은 '사랑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사랑에 눈 멀어 보세요
그 대상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어떤 것도 이유가 되질 않습니다
사랑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슬러 올라가면, 큰 사랑, 하나님 사랑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사랑의 대상
사랑을 말하지 말고
사랑을 계수하지 말고 사랑을 합시다
소극적으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적극적으론 자기 희생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제, 대상도 달리해야 합니다
그동안 누굴 사랑했습니까?
1.자신
2.돈
3.세상과 세상에 있는것을 사랑했습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은 뜨겁게 사랑했지만
헛된 것을 사랑했습니다
우상숭배요 영적 간음이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촉발되었습니다
현대도 그렇습니다
헛된 것을 너무 사랑합니다
생명없는것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에 눈먼자 되어 하나님을
떠나고 이웃을 떠납니다
항간에 유행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이제 저는 되묻습니다
"그래서 편해지셨습니까?"
"그래서 돈좀 모으셨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막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애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자가
없느니라
독자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이삭을 잃었습니까?
후에 받은 복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구하여 받은 복이 아니라
상급으로 받은 복입니다
결론)성도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때 받을 때보다 더 천국을
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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