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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짜: 2009.11.29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마11:28~30
현대는 정보화시대이기에
정보가 힘이고, 돈이 됩니다.
그 정보중에 나와 상관없는 정보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들어오기도 합니다.
*대리운전
*돈대출
*하이마트 할인판매행사등
이렇듯 세상정보기술은 호객의 한 방편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겉보기가 좋습니다.
문귀가 달콤합니다.
결국 꼭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1) 큰정보
모든 거민들이 들어야 할 정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럼에도 듣지 못한이가 전체 거민들의
3/4 이며 듣고도 믿지 못한이가 우리나라의
경우, 약 3000만이 넘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나 교회가 매력적이 않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53:1~2)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 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모양 구약의 성막 덮게에서도 보여졌습니다.
성막 겉덮게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혔기에
'거무튁튁'하니, 무슨 흠모와 매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막 안에서 본 성막은 아릅다기 그지 없습니다.
출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골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시고
예수님을 겉으로 판단하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을 믿고 연합되면
그 안의 신성이 내게 넘쳐 들어와 내가 예수화 됩니다.
2) 주님의 초청
주님은 지금도 초청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세상의 판단기준을 가진 똑똑사람들 보단
자신의 곤고한 영적상태를 볼 수 있는 자들만이
그 음성을 듣습니다.
'수고하고',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의 길은 누구에게나
수고함의 연속길입니다.
성장길,배움의 길,직장길,늙는길등
이때, 벗,배우자,형제,동업자등의 동행자가
있지만 그들 역시 수고로운 길을 가고 있기에
동반자는 될지언정
내가 쉴수 있는, 나를 쉬게하는 힘이나
목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역활을 자원하셨습니다.
시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삶의 무게 아닙니까?
시절따라 짐의 무게도 다릅니다.
어릴때는, 들고가는 짐 정도
청년때는, 어깨 짐 정도
늙어서는, 등 짐 정도
생활의 짐과 죄짐이 우리를 무너트립니다.
죽어야 이 짐이 벗겨진답니다.
그러나 이 짐이 벗겨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물론 맡기는 '행위'는 '기도'요 혹은 '내려 놓음'
입니다.
기독교신앙이 적극적이긴 하지만
염려에 관한한 적극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적극적인 것이 '기도요''내려놓음'입니다.
이때 '내려놓음'은 체념이 아닌 '포기'이기도 합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을 때
예수님을 만날수 있는 '호기'입니다
조용기 목사님도 그랬답니다.
폐결핵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한 소녀가 전해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났답니다.
마치 따귀한대가 나쁘지만은 않은 이치입니다.
그 따귀 맞고 '정신차렸다'면 좋은것 아니겠습니까?
3)주님 소개
주님은 '다 내게로 오라'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지금도 유효합니다.
왜 우리가 유독 주님께 가야합니까?
1.온유하고 겸손하니
주님은 우리에게 힘든 대상이 아닙니다.
더욱, 못 살게 하는 나쁜 군주가 아닙니다.
달리 얘기하면
'밥이요 길이요 빛'이 되십니다
믿었지만 결국 실망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완벽한 완전한 그러면서 참 사랑이신 분입니다.
2.배워라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 한사람만 두었어도 성공자라고
합니다.
중요한것은 아무리 영원을 맹세했다치더라도
죽음 저편까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까지 '함께' 하십니다.
왜 두려움이 있습니까?
왜 불안이 있습니까?
내게 능력이 없기 때문아닙니까?
주변 능력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아닙니까?
결국 살면서 더욱 수고가 증가되고
더욱 무거운 짐이 증가 되는 이유가
아닙니까?
이제 주님의 '오라'하심을 들으십시오
그 분께 나아갈 때 '꾸밈'이 소용없습니다
다만 '지체'하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계 나아갔다가
또 이탈과 나아감을 반복하곤합니다.
여기에는 지정한 '쉼'이 없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품안에서 편히 쉬고 잡니다
절대의존 아닙니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 하나님을 절대의존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주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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