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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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22
왕하 5:8~14
기독신앙이 무엇이냐 할 때
주님을 닮은 모양이고
그 모양은 깨달음만이 아닌 평생의 실제적 순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위엄적 요소가 있는데
'내 생각에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요즘 추이는' 등 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이해나 타협이나 유행이 아닌 순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진보는
처음에는 '내 생각에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요즘 추이는' 하다가도 돌아서서 언제나 '주의 말씀은' 해야 됩니다.
1)본문이해
나아만은 큰나라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문둥병자인 만큼 치료가 요청되었습니다.
그가 치료차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났을때 그의 치료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왕하 5: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어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이때 나아만의 반응은 '진노'였습니다.
특별한 대우는 고사하고 상식외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왕하 5:11) 나아만이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등병을 고칠까
하였노라
이러한 상식은 이성의 산물이기에 인간답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뿐입니다.
그 상식을 뛰어 넘어 '믿음'을 가지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신비한 신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언제나 이성과 상식을 통해 믿음을 빼앗아 갑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이성적 논리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왜 열심이 없습니까.
상식적으로 보아도 헛수고 하는듯 하므로..
무엇이 있나요?
1. 성경에 대하여
믿음은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지만 이성과 상식은 한갖 고전에 불과하며
백과사전정도로 치부하여 항상 가까이 할 말씀이 아닌 장식용이나 참고용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는 성현이다. 지옥은 없다. 천당은 무엇을 믿기만 하든 간다.
등의 거짓을 만들었습니다.
2.주일에 대해서
성경은 주일을 주의 날로 인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기에
이 날은 주안에서의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전하는 날인데
상식은 쉬는 날로 만들어 나를 위한 오락일쯤 변질되게 했습니다.
2. 십일조에 대해서
소득의 십의 일은 '하나님 몫'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저주와 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말3:8~10)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하노라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러나 이성은 십일조를 구약의 산물이라 하고
상식은 '빚있으면 빚부터 갚아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스스로 망하는 불순종 행위입니다.
이성과 상식은 죄로 마비되었습니다.
철저히 물질중심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이 나왔습니다.
그 신앙이 개인뿐만이 아니라 시대를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사람따라 시대따라 난도질합니까.
왜 주의 말씀을 환경에 맞추어 합리화시킵니까?
성경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온전한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빛이요 등불'입니다.
'전봇대 십자가'란 박경숙 선교사의 몽골간증책을 보면 복음에 대한
이성과 상식을 갖고 있지 않는 몽골 빈민들에 대한 구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 선교사는 본래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1.예수는 구주이시다, 믿으라.
2.주일은 성수해야한다. 지켜라.
3.십일조는 하나님의 몫이다. 바쳐라. 그리하면 내세뿐아니라
이성에서도 복이 된다.
놀랍게도 이 복음앞에
5년만의 5개의 지교회와12개의 가정교회와
30명의 제자와 1000명의 성도를 얻었습니다.
어찌 이런일이 일어났습니까.
현대인처럼 전해진 말씀에 따지고
두드린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왜 성도가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합니까.
왜 예수님이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까.
왜 현대 교회에 능력이 없습니까.
왜 현대 교회인들이 입만 살았습니까.
이성과 상식이 지배한 탓입니다.
똑똑한 교인하고 믿음 좋은 성도하고는 달라야 합니다.
믿음만이 이성과 상식을 능가하는데 오히려 믿음이 역지배를 당하여
발휘하지 못하니 그 신앙속에는 응답도 간증도 찬양도 없게 되었습니다.
2)한국교회
이성과 상식은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면 믿음은 하나님 백성에게만
주셨습니다. 특별한 선물입니다.
히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제는 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금된 믿음이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모양은 순종입니다.
믿음을 얻기위해서는 성경을 주야로 보십시오
1. 성경은 믿음의 샘입니다.
롭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 암았느니라
2.주일을 예배하는 날로 지키십시오
주님과 연합됩니다.
3.십일조를 온전히 바치십시오.
믿음이 증명됩니다.
무엇을 순종합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주님과 주의 말씀입니다.
히13:5~6)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오 하노라.
결론)죄로 오염된 이성과 상식은 불신앙적이고 항상 적그리스도 입니다.
반면 성경과 성령을 따른 믿음은 하나님께서 건강한 이성과 상식을
재창조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기생각을 버리고 계시된 말씀을 따라 끝까지 순종하므로
7번째 요단강물에 들어가서 나올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자꾸 '이해'나 '합리'를 구하지 마십시오 먼저 순종입니다.
제사보다 낫습니다. 믿음의 순종은 바른 신앙 고백이고, 바른 신앙 고백이며, 바른 헌신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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