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에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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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9.9.6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히 11:22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언서는 「도선비기」나 「정감록」입니다.
그러나 현대에도 각광받는 정감록인 경우 년도나 저자도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언자체가 모호하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 되어
혼란을 부추깁니다.
1)예언
사람들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궁금함이 있습니다. 점이 성행하는 이유입니다.
영계의 비밀도 알려고 합니다.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이유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언의 능력을 갖었거나 영계의 비밀을 아는 자 라면 대단한 냥
그 주변에 사람들이 꼬입니다. 그러면서도 진작에 필요한 것은 맞추거나
알 수 없는 한계능력에 무능을 드러내곤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 48: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성경에는 많은 예언자가 등장 합니다. 거짓 예언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였다면
참 예언자는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적중성,확실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대언케 하신 「말씀」을 대언했더니 그 말씀이 어떤 모양 이든, 말씀을 들은 백성의 상태가 어떻든 이루심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46:10)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2)믿음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는 신령적행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니엘이란 소년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서
왕이 꾼 이상한 꿈을 맞추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께 여쭈어 알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왕의 인정받는 모사가 되었습니다.
포로된 소년이 무엇을 지녔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하나님이 만이 왕이 꾼 꿈을 아신다.
*하나님이 만이 그 꿈을 가리켜 주신다, 하는
믿음 작용이 하나님께 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신 분이십니다. 지혜와 능력과 신실함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의 믿음소년에게 베푸신 지혜와 모략을
지금도 그 종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렘33: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은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까닭이요
②묻지 않는 까닭이요
궁극적으론 믿지 않는 까닭인데 그 근본이유는 지식의 발달로
다른존재, 다른가치를 신봉하는 까닭입니다.
3)요셉의 믿음
본문은 짧은 구절로써 요셉의 큰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서 200년 후의 민족사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해골들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장차 200년 후에는 민족의 출애굽이 일어날 텐데 그때
자기해골을 들메고 나가라는 명령입니다.
사람이 죽으면서 자기 죽음이후의 몇날 후, 혹 몇달 후는 예견합니다.
상황을 보아 예견할 수 있고 혹은 특별한 능력으로 예견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토록 200년 이후의 민족사,국가사를 예언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대단함은 실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되리라함을 믿었던
믿음의 작용일 뿐입니다.
앞서 하나님은 그의 조상들에게 애굽에 들어올 것은 물론
400년 후에 출애굽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우리의 귀감이 되는 이유는,
①하나님에 대한 확실성을 갖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노라」하면서 대체로 되어지는 일들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상황을 주시하고 움직입니다.
말씀신앙이라고 하지만 상황신앙인셈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치 않았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 상황은 호조건입니다.
애굽에서 살만합니다.
야곱의 장례에서 증명되듯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환영받고
좋은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200년후의 사태가 악화되어 출애굽하리라 함은 믿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상황보다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그 결국이 궁금하십니까?
출13:19)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②본향을 사모함입니다.
흔히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더 좋다고 합니다.」
죽기를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신자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천국이 여기보다 못할까요?
믿지 못한 까닭입니다.
요셉은 좋은 애굽보다 가나안땅 고향을 더 사모했습니다.
200년 후에 민족의 출애굽이 이루어질 때 자신도 출애굽하길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출애굽은 200년 후가 아닌 임종시에 믿음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애굽은 애굽이듯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천국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아닙니다.
결론) 어느 학생이 사진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문가는 “그냥 찍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후 그 학생은 찍고 또 찍어 지금은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무엇 입니까?
의존하는 것입니다.
의존은 무엇입니까?
기대는 것입니다.
기대는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믿음이라 할 때 열렬히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을 생각하고 믿었던 요셉의 관은 석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골을 담은 납골함도 옥함을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향을 향해 떠날 차비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요셉은「자기시신」이 아닌 「해골」이었습니다.
200년이 지난 세월의 출애굽을 믿었습니다. 사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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