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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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6
고후 7:10
영적 근심
변고가 많은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상실이 많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있습니다.
자연 후회, 원망, 근심, 염려, 고통이 큽니다.
개인적으론, 용산 철거민이나 쌍용 자동차 해고직원, 여러 비정규직들에게 동정을 갖습니다.
이들에겐 그 누구보다 근심과 염려,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1)근심의 댓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근심이 있습니까? 그 근심앞에 어떻게 대처합니까?
적극적 대처로는, 닥쳐 온 문제를 최소화 시켜 볼 요량으로 애쓰는 것입니다.
시위도 일종의 적극적 대처법입니다. 소극적 대처로는,그냥 운명으로 맞이하는 일입니다.
둘다 필요합니다만 대체로 다수의 경우 전자를 선호하고 개인의 경우 집단력을 잃으니 후자를 겪습니다.
그러나 숫자에 관계없이 위기와 문제 앞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을 경우 후자는 포기가 되는데 포기의 경우 체념보다 후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적극적이었습니다. 할 수 없는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습니다.
자연 고난도 많았지만 근심도 많았습니다.
결국 적극적 대처의 결과인 고난이 기독교의 기초를 놓았고
이 근심이 뭇사람들에게 교훈할 수 있는「근심전문성」을 만들었습니다.
고후 7: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2)근심의 대처
잠 15:13)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근심은 나쁜것입니다. 주님도「근심하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러나 근심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근심이냐가 중요합니다.
아니 근심앞에 어떤 자세가 있느냐? 관건입니다. 근심없는 사람있습니까?
잠 14:13)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근심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면 회개를 이루워 사는 근심이 되지만
근심에 눌려 낙심하고 술먹고 삶을 포기하면 결국 패망에 이루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떤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까?
물론 애당초 근심 없도록 하는 예방이 현명하지만 그렇치 않을 경우 근심앞에 눌리면 안됩니다.
늙은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힘도 없고 고기도 쓰지 못할 당나귀이기에 구덩이에 묻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구덩이를 파고 당나귀를 넣고 흙으로 덮는데 당나귀는 그 흙을 딛고 구덩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늙은 당나귀는 늙은 만큼 꾀가 있었던 것입니다.
뭇 인생에게 근심은 웅덩이요 덮히는 흙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근심은 묻힐 웅덩이가 아니라 고난을 딛고 나올 지혜입니다.
3)무엇때문에
이제는「무엇때문에」근심하느냐? 입니다. 근심에도「영적근심」이 있고「육적근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관한 근심은 영적근심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기쁨보다 영적 근심이 유익한 까닭입니다.
마치 달콤한 칵테일 한잔보다 쓴 도라지가 몸에 좋은 경우 입니다.
반면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근심이 있다면 육적근심인 셈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영적 근심자가 많을 때 신앙의 부흥시대였고 세상도 발전되었습니다.
지난 1세기의 이스라엘이 그랬고 우리나라의 경우 왜정시대와 6.25 때가 그랬습니다.
신변은 물론 생사의 갈림길에서조차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자 '근심했던 시대'였습니다.
결국 신앙도 살고 민족도 살고 국가도 중흥되었습니다.
현대는 어떤가요?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었슴에도, 자유와 안정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영적인 근심'이 없습니다.
지난 1주간 동안의 여러분의 기도를 탐사해 보십시오
무엇을 위한 기도가 많았습니까? 그 기도가 주류를 이룬 경우가 무엇입니까?
두가지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3서2절)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법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밷전 1: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며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때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결론)사도 바울은 오직 주의일에 근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근심은 '산자의 증표'입니다. 죽은자는 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슨 근심이냐?는 그 사람의 성품을 증명한하고
그 근심앞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얼마나 성숙한가?를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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