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있는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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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19
빌1:29
명분 있는 고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이유는 '삶의 고난을 해결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함 입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조차도 위로, 행복 ,희망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랑교회의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하는 행복"
또 어느 교회는 "우리들은 여러분의 내일을 믿습니다."하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교회인가?
과연 교회가 주는 메세지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1)주님의 메세지
유감되게 우리 미래가 되신 주님은 이런 메세지를 한번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회개하라」
중기에는 ~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마16:24)
말기에는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성경을 보십시오 주님이「박장대소」하셨더라「살짝 웃으셨더라」
주님이「행복해 하셨더라」가 없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고 초기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본문도 무엇을 강조합니까?
「고난」입니다.
고난이나 고통이 좋아서가 아니라 고난과 고통 너머의 더 큰 영광과 안식을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롬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믿음의 선진들의 많은 수고, 희생등의 궁극적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 보장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①하나님과 행복한 관계회복
②죄사함
③영생
④천국 소유와 삶 입니다.
이러한 삶을 죄와 죽음이 판치는 세상에서부터 누리기 위해서는 고난은 필수이고 고통은 보너스입니다.
시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주시는 신령하고 영원한 가치는 세상방식으로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속 100km의 자동차를 시속 300km의 고속자동차로 만들려면 엔진만 개조해서는 안됩니다.
전체를 업그레이드 해야 하듯이 세상 살기에 합당한 이 육체와 성향을 갖고
천국 합당한 거룩한 기질의 백성으로 만드는데 전체가 거듭나야 됩니다. 그리고 숙련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고난이고 고통인것입니다.
과거의 내가 죽고 예수안에서 내가 살고자 하니 어떻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의 행복은 물질적이거나 감정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과정이 있고 댓가가 있는 행복입니다.
고후1:3~5)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고난 앞에서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고통을 사모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성도에게 필연적입니다.
마치 모험을 두려워하면 삶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듯이 고난을 두려워하면
위로없는 신앙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는 실패된 신앙이 됩니다.
재미있는 과학적 발표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체가 상이하게 달랐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글씨는 대체로 곧고 강했으며 글씨 간격도 좁았습니다.
반대로 친일파들의 글씨는 부드럽고 글자 간격도 넓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기질은 소신이 있는 반면 친일파들의 기질은 감정적이었던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고난 앞에 세워보면 압니다. 고난 앞에 엎드리면 작은신앙입니다.
도망간다면 세상주의 신앙입니다.
반면 맞서며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정금된 신앙인것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3)명분있는 고난
고난에도 명분이 있습니다. 같은 상처라도 강도와 싸운 상처와
술먹고 비틀거리다 난 상처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전자는 영광의 상처라면 후자는 수치의 상처일 것입니다.
나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대체로 탐욕으로 말미암아 온「고난」입니다.
재정적 고난은'자족' 치 못한 결과의 고난 아닙니까?
건강적 고난은.살피.지 못한 결과의 고난 아닙니까?
이 고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인격을 고치고 삶을 고쳐야 합니다.
주를 위한「고난」은 영광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을 높이다가 겪는 상대적 핍박, 경제적 궁핍, 환경적 곤경등이 포함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설적인 고난입니다. 그러나 꼭 회복해야 할 고난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한 고난을 받아 보셨습니까? 아님 손해를 겪어보셨습니까?
위하는 고난 감수, 고통 감수가 없으면 참 사람이 못됩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질차이 입니다. 성품차이 입니다.
나라 사랑하는 성품이냐? 기질이냐? 자기 사랑하는 성품이냐? 기질이냐?로 결정된 것입니다.
나를 사랑할 수록 내 짐은 주님께 드립니다. 반면 주님 사랑할 수록 주의 짐은 내가 질려고 합니다.
기독신앙의 진수가 무엇입니까? 살고자 하면 죽지만 죽고자 하면 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릴 사랑하셔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 사랑하여서 주님을 위한 고난을 감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벧전 4: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결론)주님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는 일에 내가 무엇을 해야할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 왕성한 부흥을 이루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참여하십시오
시140:12)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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