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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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짜: 2008.11.16
설교자: 예용범 목사
본 문: 행27:16~18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됩니다
한 TV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연속극은
우리 사회의 베토벤과 오케스트라의
새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확산되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는
불행 바이러스입니다
이 까닭에 희망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습니다
1)희망의 글
한 글을 인용 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빠져 나가는 출구가 있게 마련이다
출구의 안쪽에서 서성이다
포기하고 돌아서려 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이 등을 떠민다
결국 ‘그래 좋다 밀고 나가자’하며
문고리를 잡는다 이판에서 필요로 한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에크낫 이스워런의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 왔을 때’의 발췌 글입니다
위와 비슷한 또 다른 글입니다
“용기가 있어도 몸이 천근 만근 무거워
꼼짝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방은 막혀 있고 온통 절벽 아니면
낭떠러지입니다
새벽에 눈을 떠 조용히 기도를 시작 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하늘에서 들리는
미세한 음성에 뜨거운 눈물을 쏟고
다시 마음을 정돈 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힘을 내 걸어 가겠습니다‘
공감하는 글입니다
왜 공감됩니까?
같은 처지
같은 신앙
같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믿는 신앙은
어떤 상황이든 삽니다
하나님의 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94:14)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진정한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되었느냐?
주님의 기업되었느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시는
성도입니다
주의 안전지대에서 항상 머물고 있습니다
2)시대상황
본문의 사도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어 갑니다
타고 가던 배가 ‘유라굴라’라는
큰 태풍을 만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사도바울은 배안의 사람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음식을 먹으십시오
*우리는 다 삽니다
오늘의 모양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경제대란으로 모두가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태풍만난 선원들이 살기 위해
각종 처방을 낸 것처럼
국가마다 기업이나 개인마다
살기 위한 각종 묘책을 내 놓고 있지만
시원하질 않습니다
결국 낙심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행27:20)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왜 야밤도주를 합니까?
왜 자살을 합니까?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의 은혜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듯이
구원의 여망이 없다고 할 때
은혜가 옵니다
이 때를 경험한 이들은 흔히 ‘기적’이라고 하며
옛 어른들은‘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왜 태풍이 오느냐?
왜 풍랑의 고난이 있느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본문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은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가
곧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나 사건 앞에서
가만히 있기보단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 때는
포기보단 ‘믿음’이라는 신비한
병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 역시 큰 풍랑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어부출신인 제자들이기에 최선을
다 했지만 풍랑을 잠재우진 못 했습니다
그 후 배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마8:25~26)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믿음의 간구는 주님을 일으킵니다
주님을 개입 시킵니다
믿음의 진가를 아십니까?
평상시 보다 위기의 때와
죽음의 때에 빛을 발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만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하고 당당한 자격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믿음의 진수를 누릴 때 아닙니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 것
하나님께 의뢰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것 등을
만끽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늘 갖고 다니는 일은 귀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우산 갖고 다니는 일이
크게 덕 볼 때가 있습니다
비 올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
평상시에는 부담스런 일입니다만
고난과 죽음이 올 때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힘들 때는 작은 막대기도 의지가 되고
두려울 때는 누군가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하물며 전체의 대란 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결론)사도바울은 다른 선원들에 비해
더욱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신분상 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이에게 오히려
희망 메세지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객기가 아니라
이 희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24)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이 희망의 근거는 “괜찮아 질꺼야”
“차차 나아 질꺼야” 하는 막연한
자기 신념이 아니라 분명한 주의 계시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계시가 있습니까?
바울을 안심 시켰던 이 계시를
여러분을 위한 계시로 받으십시오
“안심하라”는 약속은 여러분에게 주신 보장입니다
그 후 나만 안심하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이 희망 메세지를 외쳐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을 살리고자 하심이
다른 선원들까지 살리기 위함입니다
즉 세상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나 때문에 세상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도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희망 바이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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