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하나님이 두신 소원 > 설교말씀

하나님이 두신 소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8-14 17:39 조회 1,292회 댓글 0건

본문

술 취한 사람의 소원과

성령 충만한 사람의 소원은 다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자기의 기쁜 뜻을 따라

방탕함의 소원을 갖는다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오히려 절제 된 소원을 가질 것입니다.

 

1) 마음의 소원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알아주시는데

지난주의 말씀대로 그 삶의 전체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워 주시고”

본문은 그 방편따라 “소원을 두어 이루게” 하십니다.

 

예컨대

한 구두 수선공이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분명 구두 수선공의 마음이고 소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가 누군가요?

미국 개척기에 큰 부흥의 불길을 이루었던

D.L 무디 입니다,

 

선교사의 선교보고를 듣고 나도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소원이 생겨

선교헌금 시간에 자신을 드리고자 헌금함에 앉아

있었던 소년의 마음과 소원은 하나님이 두신 것입니다.

결국 인도의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절 받는 꿈을 꾼 것은

요셉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두신 꿈이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의지와 신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섭리적 인도였습니다.

 

1) 마음의 소원

사람마다 다른 소원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유대인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이

더욱 가도록 하셨고

베드로는 이방인 보다 유대인 동족에게,

그리고 십자가에게 거꾸로 못 박혀 죽는 영광의 소원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변화 했느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느냐?는

인격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 변화는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물질에서 영혼으로써의 가치관 변화입니다.

 

우리 복음의 신앙에는 이 변화가 줄곧 있습니다.

“남한의 성자가 된 북한의 도둑놈” 작년 조선일보의

한 칼럼제목입니다.

우리 교회에 다녀간 조 영호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망나니가 변화되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사가 대기업 사장이, 가수나 코메디언도

목사가 되곤 됩니다.

이런 일은 일반으로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 소원이 더 하여져서

장애인, 노숙자의 돌봄이 되기도 하고

오지의 선교사가 되고도 합니다.

 

내가 갖는 꿈과 신념은 나를 기쁘게 하는

내 소원인만큼 내가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소원을 두어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이기에 하나님이 이루워 내십니다.

잠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전자는 내 의지라면

후자는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이기에

훨씬 강력합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꿈은 다 여기에서 시작되기에

성취되었고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가 아닌

주의 소원을 따라 “무엇이 되어라.”하여 완성됩니다.

 

이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 의’를 사랑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일찍이 이 소원을 지니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 소원을 순종하면 삶이 순적하지만

거부하면 “사울아 사울아, 가시채로 뒷걸음치기에 네가 고생이라”하심같이

고생합니다.

 

요나 선지자가 왜 물고기 뱃속을 들어갔나요?

원수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 소원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2) 감동을 받은 자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

마음과 설계와 후원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봉급이나 징용으로 일꾼들을 부르지 않고

세금이나 약탈로 그 모든 재료들을 조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습니다.

소원을 주신 것입니다.

출35: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지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더니.

 

이 소원에 순종하는 자들의 수고와 헌물로

성막과 기구가 하나하나 완성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광야에서,

 

이 성막짓기는 역사적 사실이나 또 신앙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순종하는 신앙, 감동받는 자원을 웅변합니다.

이 때에는 순종과 자원함이 넘쳐서

성막짓기에 모든 것이 넘쳐났습니다.

출36:6)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현대 신앙에는 이 순종, 이 감동, 자원이 없습니다.

순종이 없으니 감동과 자원도 없습니다.

 

오직 스스로 만들고 오직 책임지는 신앙이 되다보니

기적이 없습니다.

표적이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똑똑한 듯하나

영적으론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큰 기근시에 과부와 아들이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소원을 두어 먹고 죽고자 했던 양식을

엘리사에게 공궤하도록 했습니다.

과부는 이 소원에 순종하여 자신들은 물론 엘리사도 살게 했습니다.

이 순종과 자원에 기적이 왔습니다.

 

 

3) 하나님의 소원

우리 마음에 두신 하나님의 소원은

‘세상이나 본성’이 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과 내 본성은 “큰 자가 되어라, 강한자가 되어라.”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은“온유하고 겸손하라. 섬겨라.” 합니다’

내 본성은 ‘더 가져라.“인데 비해

하나님 소원은 “주어라 섬겨라.”입니다.

 

그러나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사랑이고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1차적인 일에 순종하면

2차적인 일의 소원이 오고

3차적인 일의 소원도 옵니다.

때론 순간의 감동도 옵니다.

 

하나님이 두신 소원을 이룰 때

궁극적으로 나도 남도 세상도 살고 풍성케 됩니다만

그렇지 않은 내 소원은 사는 것 같아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렘17:9~1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피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노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일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가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결론) 여러분은 어떤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까?

그 소원이 어디에 기인한 것입니까?

나, 나, 나 중심은 죽어야 합니다.

주, 주, 주 중심이 살립니다.

주의 소원을 사모하십시오.

이루시는 이는 주 하나님이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