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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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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7-30 00:13 조회 1,216회 댓글 0건

본문

약국에서 젊은 부인이 남편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습니다.

“신은 마음으로만 섬기면 되는거야.”

남편이 교회를 간다고 하니 반대하는 발언 같습니다.

이 부인의 말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때 문득 부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부인 사랑은 남편이 마음만 가지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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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의 모습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그의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시작일 뿐, 최고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로 까지

나가야 됩니다.

이 다함에는 마음에 머뭄만 있지 않습니다.

산 믿음은 성장하여 성숙한 곳을 지향하기에

최고의 목표 속에서 최선과 최대의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최고의 기쁨을 내가 받아 누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믿음,

무엇일까요? 하나님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받는 건가요?

주는 건가요?

희생하는 건가요?

희생을 요구하는 건가요?

 

참 사랑은 말을 떠나 주는 것이요.

큰 사랑일수록 큰 희생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이렇습니다.

애국자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데 이렇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희생적 사랑이요.

아직, 여전히 죄인들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이기에

큰 사랑입니다.

왜 이처럼 사랑하셨나요?

우리를 믿어서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지라” 이기에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음에서 사랑합니다.

이 하나님 사랑을 믿기에 고백하고

나아가 이 하나님을 찾고 기쁘시게 하고자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짝 사랑이 아닙니다.

응답사랑이요, 보답사랑이요,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랑입니다.

 

2) 사랑의 성격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기록된 장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이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사랑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그리고 사랑이 없이는 그처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인물을 봅시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인류최초로의 순교자입니다.

아담의 둘째 아들이지만 하나님께 형보다 나은 예배자가

된 까닭에 형의 살의로 죽은 장본인입니다.

 

왜 나은 예배를 드렸나요?

믿음으로 곧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형보다 하나님 사랑 더욱 하니 예배도 나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식적 예배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구원의 감사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히11:6)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홍수와 심판과 배가 없던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홍수와 심판에 경고를 받고 구원배를 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경고하심을 받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지만

곧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같은 행동이지만 무서움에 의한 행동과

사랑으로 의한 행동은 다릅니다.

믿음은 두려움도 있지만 무서움의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께 강한 사랑은 언제나 이래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순종으로 증거를 보였습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랑받는다.

사랑한다는 활력과 생기가 돋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의 대상을 잘못정하여 탈진합니다.

잘못된 사랑을 하여 후회를 하곤 합니다.

 

성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드립니다.

이 사랑안에 머물수록 그 성도의 모든 것이

물 먹은 화초처럼 피어오릅니다.

 

아2:1~2)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주의 사랑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주님은 어떤가요?

아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사랑은 탁구공같이 주거니 받거니 해야 빛납니다.

비록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지만

그 사랑에 감읍하여 믿음으로 응답하고 사랑으로 보답할 때

하나님과의 사랑관계는 견고해 집니다.

 

3) 확고한 관계

사도 바울이 왜 복음전도에 고생을 감수할 수 있었나요?

 

왜 베드로가 십자가 위에서 거꾸로 못 밖혀

죽을 수 있었나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를 잊지 않으십니다.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살아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믿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고전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알아 주시느니라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써 ‘의로운자’란

증거를 받았고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노아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까?

믿음으로 받았습니까?

그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순종이 있습니까?

경외함이 있습니까?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은 이루며

진노하시는 일은 거부하십니까?

 

결론) 하나님은 사랑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가, 사랑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당연히 사랑하지 않으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적인 분이시오,

우리를 향한 사랑도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우상숭배, 세상사랑, 돈을 사랑하면 간음하는 자로 간주하십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면 그를 전심으로 따르고

세상이, 돈이, 우상이, 하나님 같으면 그를 따라야 합니다.

옛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의지를 활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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