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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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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7-30 00:07 조회 1,2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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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모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를 보았던 대학생들은

“그의 포스가 보통이 아니었더라” 하는 놀라움의 댓글을 실었습니다

거대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써의 위엄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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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인의 표적

호랑이의 위엄이 다르고

개의 위엄이 다릅니다

 

오랜 병을 앓은 환자의 위엄이 따르고 큰 부자의 위엄이 다릅니다

사람은 직업따라, 지성따라, 신앙따라, 나름의 위엄이 있습니다

 

성도의 위엄은 무엇입니까?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의 표적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비한 사람’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철저한 자연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써 특별한 위엄이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 표적이 따르는가? 할 때 그렇치 않습니다.

죽은 나무와 어린나무에게는 열매가 없듯이

믿음의 활동을 쉬는 자들과 갓 믿는 자들에게는 자연 이 표적이 아직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시사하는 바가 바로 이런 제자들 때문입니다.

막 16: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들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 임러라.

 

예수님의 제자들일지라도 믿음이 없으니

이 위엄,표적이 아직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은 후

믿음있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전혀 딴 사람 같은

표적과 위엄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더니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모세도 만찬가지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늙은 양치기로 살 때에

이런 표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위엄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의 종으로,

그 백성의 구원을 이루고자 했을 때 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2) 위엄의 주체

주의 일을 하는 데는, 주의 사람으로서의 이 위엄이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잠자는 데는 침상과 베게가 필요하지만

주의 일은 하는 데는, 마귀와 싸우는 데는, 이 위엄이 꼭 있어야 합니다.

 

신약의 대표적 인물인 사도 바울은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께 붙잡혀 복음을 전도하는 데는

말과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설득력 있는)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 신비한, 위엄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믿는 사람입니까?

믿음을 주신 하나님입니까?

믿는 사람의 기술이 아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성령의 은사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성령이 이미 역사 속에 오셨기에

성령의 권능, 믿는 자들의 표적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이런 위엄의 사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 복음을 받고

광명하고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위엄은 아카데미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자의 문하생이 되어 전수받을 수 없습니다.

엘리사의 수종 게하시는 엘리사 문하에 있으면서 전수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목한 사람은 표적의 사람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 표적은 과시용이나 돈 벌이용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기 위한

“하나님의 종이다”하는 신임장이기 때문입니다.

 

무당의 신 내림을 보셨습니까?

굿하고 점 봐주는 무당도 학교출신보다는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 더 용합니다.

 

하물며 주의 종에게 이 성령의 은사, 표적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권위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긍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바로의 술사들이 이 표적을 서로 이루었으나

바로의 술사들이 모세의 표적을 행하지 못하자

출 8:19) ~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곧 실패 선포입니다.

믿는 자들, 이 위엄, 이 표적을 회복해야 합니다.

 

3) 현대 신앙

현대 신앙은 어떻습니까?

믿는 자들은 많건만 표적 소식은 잘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위엄이 실종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가로등이 많으면 별 빛을 볼 수 없듯이

과학이 진보하다 보니, 그만 과학적 신앙이 되어

그 위엄을 상실한 탓입니다.

그러나 오지의 선교지에서는 여전히 위엄있는 표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과학적이기도 해야 되지만

신비하고 위엄있는 신앙도 이룩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신앙이 과학을 신봉하지 않고

그 과학을 이륙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그 바탕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과학적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처음부터 신비 아닙니까?

하나님이 신비이고 예수님이 신비이며

구원이 신비이고 지옥과 천국이 신비입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뇌와 작은 뇌의 영향이 다르듯이

철학적 사고와 신비의 사안은 다른 영역이기에 함께 갑니다.

 

그럼에도 현대신앙은 물론 교회조차도

톰 크루즈가 믿는 ‘싸이언 톨로지’처럼 되고 있기에 유감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를 알고 하나님의 위엄을 안다면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 영감을 “갑절을 내게 주소서” 했던 것처럼

갑절의 영감, 갑절의 은사를 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슨 신비가 있습니까?

그 위엄을 보일 수 있습니까?

그 신비가 주님께 왔음을 확신합니까?

증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습니다.

자칫하면 신비주의가 되기 쉬운데,

그렇다면 신비와 위엄이 클수록 주관적일 수 있는 만큼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결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본문은 구체적으로 언급했지만

믿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위엄이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또 다른 확실성은, 그 표적을 갖고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표적은 표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치 않은체,

-개인의 카리스마만 높아가지고

-금품이 요구되고

-혹은 가정이 해체되고 개인이 형편이 종전 보다 못해졌다면

이는 믿는 자의 표적이 아닙니다.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믿는 자의 표적,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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