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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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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6-22 21:07 조회 1,3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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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 아나운서가 사업투자로 10억의 손실을 보았답니다.

어떨까요?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이런 경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돈 갖고 인심이나 썼더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었을텐데...“

 

1) 후회하는 인생

이런 후회,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또 합니까?

 

도연명: “인생은 허깨비 끝내는 공과 무로 돌아가리”

 

바이론: “나의 인생은 만추의 낙엽이다 꽃과 열매는 다 떨어지고

벌레와 낡음과 비애만이 내 것이 되었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후회할 일들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탐심과 자신이 ‘청지기’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란 관리인입니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주인이 맡겨진 재산을 관리하는 종입니다.

 

이런 종에게 충성은 기본이고 부지런은 옵션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처럼, 자기인생에게 잘못된 청지기로 삽니다.

 

이 청지기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1. 주인이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주인이 안 보이는 것과 없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청지기의 불충의 시작은 주인이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자연 자신이 관리하는 재산은 자신 것인 냥

허비했던 것입니다.

 

2. 심판이 있음을 잊었습니다.

청지기는 언제든 평가 받습니다.

잘하면 더 맡고 잘못하면 하던 일도 빼앗깁니다.

주인과 청지기의 차이는

주인은 어디서나 청지기를 관찰합니다만

청지기는 주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3. 내일을 몰랐습니다

청지기는 항상 청지기로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청지기가 누구입니까?

주인은 누구입니까?

심판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왜 이 말씀을 하십니까?

 

인생 모두는 시간, 건강, 물질, 은사등의 청지기입니다.

어머니로부터 나올 때 무엇 하나 갖고 나온 것 없기에

무엇 하나 갖고 세상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주인입니다.

각각의 능력 따라, 하나님의 것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평가받는 일입니다.

산대로, 말한 대로, 믿음대로 평가 받습니다.

이때 충성된 청지기는 보상받고 위로 받지만

게으르고 악한 종은, 책망을 받습니다.

마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법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 지혜로운 청지기

불충했던 청지기가 지혜로운 청지기로써

주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일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기름과 밀가루를 탕감해주고

나중에 살 일을 마련합니다.

 

특별히 ‘나중일’, ‘내일’, ‘미래’를 준비한

지혜를 본 받으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잠깐 살 세상의

미래를 악착같이, 부당한 거래를 하면서도

혹은 전 재산을 들여 투자합니다만

믿음으로 산다는 성도들이, 믿음과 다르게, 오히려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하게 천국을, 상급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죽음을 받으신 이유는

부활의 영광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신앙진리를 붙잡았던 이유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였습니다.

 

전남 신안군에 여러 교회가 있고

출중한 종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더듬어 올라가면 문전도사라는 여전도사님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입니다.

6.25 때 인민군이 그녀를 처형했는데

이유는 “씨암닭이 되어 알을 많이 낳아서” 였습니다.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인민재판을 한 후

그 시체를 바닷가에 7일 동안 방치했습니다.

훗날 국군이 가서 수습하고 나중에 피난 갔다 온

교인들이 안장 시켰습니다.

 

인민군들은 씨암닭만 죽이면 낳은 알과 병아리는

자연사 한다고 믿어 문전도사만 죽였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낳은 알과 병아리는 잘 자라 전국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문전도사님이 왜 1년에 고무신 9켤레를

허비하면서 열심히 전도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있는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당장 보다 ‘미래’를 보는 지혜의 안목이 있습니다.

히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친구를 사귀라

 

지혜가 무엇입니까?

‘보다 나은 가치를 아는 힘’입니다.

 

현재보다 미래,

불의한 재물보다 천국신앙,

또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도다.”하심입니다.

또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하심입니다.

우리의 친구는 누구입니까?

주님입니다. 재물을 갖고 주님을 섬길 수 있을 때

그 분을 친구로 사귈 수 있습니다.

 

또 가난한 이웃들입니다.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

치료받지 못하는 노인들.

 

재물에 몰두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를 잃습니다.

 

인도잠언: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울고 네 주위의 사람들은 모드 기뻐했다.

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울고 너 혼자 웃도록 하라.“

 

결론)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이 영향이 개인의 신앙과 교회 안에 너무 깊이 들어왔습니다.

소위 배금주의입니다.

참 신앙은 이러한 체제나 이념을 초월해야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로운 청지기가 된 이유는

이 변화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잠27:1~2)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눅18: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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