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으로 돌아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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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비둘기 2마리 중, 한 마리가 다리 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뜻 보아도 도시의 새로써 살기가 힘들었던 흔적입니다.
비둘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고양이도 힘들고
더 나아가 시베리아 호랑이도 힘듭니다.
자유가 있으면 먹이가 없고
먹이가 있으면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1) 현대인
먹이와 자유를 함께 누리고파 애쓰니
만물이 심히 피곤합니다.
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유 있으면, 자유 있으면, “행복하리라” 하여
새벽부터 밤늦도록 애씁니다.
그런데 행복하질 않습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행복이 있습니까?
굳게 다문 입술,
종종걸음, 많이 있습니다.
이 탓에 시집도 미룬 여성들은 30~40대에 갱년기가 왔고
40~50대에 치매가 오며
결국 국가 건강마져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오죽하면 애 낳는다고 장려금을 주겠습니까?
오죽하면 유치원비용과 건강비용을 주겠습니까?
가정은 해체되고, 부모가 방치한 아이들은 사회성을 잃어 폭력과 외로움에
만신창이가 되고 혼자선 학원에서 집으로 오지 못하는
허약한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세계2차 대전의 영웅인, 맥아더장군의 지적입니다.
“국가의 모든 문제는 인물의 문제이고
인물의 문제는 양심의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는 종교의 문제이다.“
실감납니까?
동의합니까?
현대종교와 교육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아니 목적은 없고 오직 잘먹고 잘사는 목표만 있잖습니까?
종교, 특별히 우리네 신앙이 소유에서 경건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물질에서 주의 말씀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2)경건의 회복
왜 경건해야 합니까?
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까?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즉 물질, 권세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듯해도 결국은 침륜과 멸망에 이르는 덫입니다
이보다는 하나님 신뢰, 기도, 선한 삶은, 하나님의 팔을 붙드는 강력이 됩니다.
딤전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예수님이 왜 오셨나요?
“양으로 하여금 생영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라”
성령님이 왜 보혜사가 되시나요?
히2:15~16) 마귀를 없이 하시며는 물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이 경건의 연습을 위해서는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딤전6:5~6)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생각이 많으면 과부하가 걸립니다.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이 많으면 집중이 않됩니다.
마찬가지로 소유와 세상찾기에 분주하고
피곤하면 경건은 사라지고 주님도 잃게 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살게하는 이는, 내가 아닌 주님이십니다.
경건치 못하면 이를 부정하고 경건하면 이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중국에서 느낀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아직은 모든 사람들이 ‘사회성’이 있습니다.
상점들이 6시면 문을 닫고
백화점도 8시면 문을 닫고 더불어 어울립니다.
왜 그럴까요? 개발도상국 같은 시점인데도
여전히 돈 보다 삶이 귀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아들을 15년간 키워낸 선교사님인데
오늘 강제출국당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고아원을 운영하는데, 처음에는
사람약속 믿고 사업했다가 빚쟁이가 되었답니다.
3년 후에야 이 시행착오를 지나
비로써 하나님 바라보는 경건을 지녔다고 했습니다.
죠지 물러목사가 생각났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 사람의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고아원을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죠지 물러목사님도 이 과정을 겪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바라고 구하는 자에게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시147편을 살펴봅시다.
3) 경건의 정의
경건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삶인가요?
하나님과의 ‘관계지속’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불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지속은 즉 죄없는 삶을 사는 모양입니다.
과거의 죄는 청산되었으니
오직 현재의 죄를 거부하며
혹 범죄하였다면 즉시 자백하고 고치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 내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삶의 구현입니다.
범위가 큽니다만
형편과 은사와 직분에 맞게 이루면 됩니다.
현실의 두려움도 있고 한계가 있지만
때론 그 상황을 초월하며 이룰 때
경건은 발전됩니다.
결론) 망아지는 길들이지 않으면 좋은 말이 될 수 없고
어린 솔 나무는 북돋워주지 않으면
훌륭한 임목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식 교육도 그렇습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내다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 섬김과 나눔, 기도 생활을 가리켜야 합니다.
‘가리키는 때’와 ‘배우는 때’는 동일합니다.
내 경건은 어떨까요?
대체로 자신에게는 후하기에 연습하지 않아 성장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 때문에 경건이 망합니다.
사는 것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건을 살리십시오.
“과연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고 과연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으리라”
경건함 또 다른 말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말씀입니다.
증거는 예수님이시며 성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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