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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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동요의 대표곡이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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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온갖 꽃이 만발하여 꽃 축제도 열리고 있습니다.
이 동요를 음미해 보면
옛사람들은 꽃동네에 살았어도
현대인들은 콘크리트 속에 삽니다.
1) 거주지
“어디에 있느냐?” 는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무엇하느냐?” 아니 “누구냐”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나요?”
“예배당에 있습니다.”하면
“예배하는 성도이다”는 고백이고 진술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면 어떨까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 개가 쇼파 밑에 있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와도 반가이 맞지 않고
먹을 것이 있어도 나오지 않은 채
쇼파 밑에 있다면 사고 친 겁니다.
둘러보면 쉬를 해놓았습니다.
오늘 아담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지만
있는 곳을 말하지 못한 체 엉뚱한 말을 합니다.
10절)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를 진 까닭입니다. 사고 친 겁니다.
죄는 상대방을 꺼리게 됩니다. 불화목을 이룹니다.
수사관들이 범죄를 추궁할 때 눈을 보는 이유와 같습니다.
죄는 죄책이 와서 두렵거나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심은 그의 거주지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의 범죄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의 죄의 상태, 즉 거주지를 깨닫게 하여 회복시켜주시기 위함입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 아담
아담은 인류 최초의 사람입니다.
최초는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란 의미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다’는 의미입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사람이 탁월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존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움의 이유입니다.
왜 대통령을 존경해야 합니까?
왜 대통령이 높습니까?
국민들이 그를 백성의 우두머리로 선출했고
모든 권세를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만물보다 탁월합니까?
왜 사람이 만물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우두머리로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당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만물이 사람앞에 떠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담의 범죄는 인류 모두의 범죄가 되었고
아담의 타락은 모든 인류의 타락이 되어
아담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요? ‘아담 안에서 아담과 같이’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나면서 죄인으로 태어나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숨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어디에 있느냐”는
모든 인생들을 찾으시는 음성이고
모든 인생들의 상태와 영적 거주지 지적입니다.
이 모양을, 옛 이스라엘 민족을 모델삼아
전체 민족에게 듣게 하셨고
이 거주지와 새 거주지를 출애굽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으로써
분명히 제시하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는 이 일을 예고한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와 타락은
아담만이 아닌 전 창조물에게 까지 미쳤습니다.
아담은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고 (3:17)
여인은 해산의 고통을 크게 받으며 (3:16)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3:18)
아담의 범죄는 ‘즉시’, 이렇게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3) 사람을 위하여
범죄하여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은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구원의 조치를 이루셨는데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한 동물을 희생하여 그의 수치를 가리우게 하셨습니다.
모든 희생제사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최초 사람을 위해 희생당한 이 짐승,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이고
구약의 많은 제물로 죽었던 어린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지금 인류는 두 종류의 족속이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여전히 아담의 죄를 갖고 사는 자연인이 있고
반면 아담의 안에서 아담의 죄를 갖고 태어나 살았지만
예수 십자가를 믿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천국 백성이 있을 뿐입니다.
롬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결론) 현대인은 꽃동네를 그리워하며
삭막한 도시 콘크리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품안에서 살다가
범죄하여 하나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 방랑자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다시 하나님 품안에 되돌아가 영원히 머물게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어찌 찬양 않할까? 찬양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실 때
“주안에 있습니다.” 고백할 할 수 있습니다.
“증거가 무엇이냐”하신다면
“성경에 의한 예수십자가의 공로입니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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