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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문밖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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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5-03 23:24 조회 1,446회 댓글 0건

본문

서울의 왕십리는

왕의 궁궐에서 10리밖 지역이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온갖 쓰레기 하치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벽제 화장장은 어떻습니까?

도시 한복판에 있지 못하고

도시 밖에 있습니다.

소위 혐오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벽제 화장장은 도시 발전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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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문 밖

이와 같은 일은 동서고금이 같습니다.

귀중품은 장롱 깊숙이 보관하는 반면 쓰레기는

문 밖에 버리는 이치입니다.

 

옛날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수도 예루살렘 안에는 귀한 시설이 있었다면

그 밖에는 사형장 그리고 공동묘지가 있었고

제사드린 각종 폐기물의 집합장이었습니다.

히13:11) ~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상상이 갑니까?

냄새와 연기와 더러움이 가득 찬 곳

우리에겐 옛 난지도가 그랬습니다.

 

2) 갈보리 언덕

주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갈보리는 영문 밖의

언덕입니다.

 

주님께서 제사장의 심문과 빌라도총독 재판은 도시 안에서

받으신 후 처형은 영문 밖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다 쓰러지니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대신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무엇하나 우연히 되질 않았습니다.

사복음을 읽다보면 “주의 말씀을 이루려함이니라”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말구유의 탄생도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의 배반도

빌라도의 심문도

영문 밖의 죽음도 주의 선지자로 하신 말씀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죽으신 날, 방법 등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방편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희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죄 용서를 받고자하여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

서민들을 어린양 수컷

부자들은 숫소를 대신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죄사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몸은 각을 떠서 영문 밖에서 불살랐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셨기에

이 방편을 따라 몸은 각 뜬 것 마냥

양손, 양발은 못에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

피흘려 영문 밖 무덤에서 장사 지냈습니다.

 

이 대신 피흘려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별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나를 위한 희생의 댓가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빚을 졌노라”고

고백하며 그 빚 갚기에 삶을 드리게 됩니다.

 

신부전증을 앓는, 곧 죽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신장을 주어 살려냈습니다.

살아난 사람은 어떨까요?

자기의 은인을 위해서 보답하면서 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은 이 보다 더 큽니다.

독생하신, 유일한 아들을 죄 값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여

십자가 죽음을 이루웠습니다.

 

이 공로로, 영원히 죽었던 내가 살아나 의인되었고 영생을

얻었으니 감사, 찬양, 헌신이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이 성도들의 공통된 고백이 있습니다.

히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가자

 

‘은혜를 받았으니 그 보답하는 자세로 살자’입니다.

 

불신의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혹은 국가와 어떤 가치에 둡니다만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먹던지 마시던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자 합니다.

생선의 상태를 알려면 아가미와 눈을 봅니다.

소금은 맛을 봅니다.

어떤 것은 흔들어 보고

어떤 것은 색을 봅니다.

성도의 믿음감별은 고난 앞에서 진위가 감별됩니다.

 

3) 성도의 영문 밖 십자가

1. 섭리적십자가 - 구레네 사람 시몬은 하나님의 섭리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감당했습니다.

 

2. 경건의 십자가 -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 받았던

한나 선지자의 경우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3. 사명의 십자가 -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기에 많은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영문 밖에 있습니까?

현대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치욕을 감당하기보다는

오히려 십자가를 사다리 타서 올라가고자 하는

내 소원성취 신앙이 많아졌습니다.

생각 보십시오.

여러분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입니까? 고난입니까?

내 욕심과 잘못으로 인한 십자가나

타인의 잘못으로 인한 십자가는 진정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복음을 위한 진정한 십자가를 지고 진정한 영문 밖으로 나갈 때

역사도 발전하고 인류도 빛을 봅니다.

 

꼭 100년 전, 우리나라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

우리나라 여인들이 이름조차 없이 ‘큰 년’, ‘작은 년’ 이라

불리울 때 미국에서 자란 32세의 독일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선진문화를 버리고 찢어지게 가난한 이 땅에서 22년간을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섬겼습니다.

 

1934년 1월 그가 영양실조로 죽던 날

많은 과부들과 입양아들과 수천 명의

광주시민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담요 한 장, 동전 7개, 강냉이 가루 2홉

38명의 과부, 14명의 입양아였습니다.

 

우리말 이름, 서 성평(본명/엘리제 셔핑)선교사입니다.

기독교 십자가의 원본은, 주님의 영문 밖 십자가라면

이러한 앞선 선교사들의 삶은 우리의 발자취입니다.

요즘이 원본을 잃어버렸습니다.

 

결론) 꽃은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군인은 용감해야 합니다.

기독교와 성도는 십자가의 삶을 꺼려하면 않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올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할 것이니라“

 

성 어거스틴 - 아, 희생의 사랑없이 어찌 십자가의 섭리가 이루워질 수 있을까!

 

십자가는 효도와 같습니다.

십자가의 겉은 못이 가득하나 그 속에는 큰 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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