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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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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5-02 00:45 조회 1,290회 댓글 0건

본문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십자가에서 나타납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이 달려있습니다.

고난 받는 주를 크게 생각하고

그런만큼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빈 십자가, 빈 무덤입니다.

내세에 대한 지향적 믿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자칫하여 부활없는 신앙이 되면 빈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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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리우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님은

땅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늘에 ‘올리우사’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끌어 올리우심을 받은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왕하2:1)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올리고자

하실 때에

 

이렇듯 ‘올리움’은 하늘에서 부터의 끌어 올리움입니다.

 

이 끌어 올리움은 훗날 주님 재림 시에

땅에 있던 성도들이 변화되어 끌어 올리움을

당할 것에 대한 예증입니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지금의 스마트 폰은 10년 전에는 상상만해도 버거운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용화되었습니다.

통화는 물론 인터넷을 하고 사진을 받고 등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론 ‘승천’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론 쉬운 일입니다.

 

손목이 아파 병원을 찾았습니다.

x-ray를 찍어보니 손목 관절이 복잡했습니다.

의사와 얘기하던 중

의사는 과학자 아닙니까?

몸은 신비하답니다.

진화될 수 없답니다.

그러면서 의사는 몸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낫도록 돕는 사람일 뿐’ 하나님이 낫도록 하신다고

했습니다.

 

진공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들입니다.

하나님은 큰 힘으로 성도들을 끌어올리십니다.

엘리사가 예증이었고

주님이 증거였고

성도가 완성입니다.

 

2)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이제 또 다른 예수님을 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입니다.

높으신 예수님, 영광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는 두 가지 신분이 있습니다.

 

1.비천한 신분

사람이 되신 주님

말구유에 뉘우신 주님

고난 받으신 주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장사되신 주님

 

2. 승귀한 신분

부활하신 주님

승천하신 주님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

심판하시는 주님

다스리는 주님

 

앉으셨다는 의미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마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웠다“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그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지상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마치셨기에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제는 ‘기다림’입니다.

주의 복음이 천하만국에 전파된 후

주의 백성들을 데리러 다시 오실 그 때까지의

‘기다림’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첫 번째 오심은, 낮은 신분의 방문이었고

그 목적은 ‘죽으심’이었다면

주님의 두 번째 오심은, 높은 신분의 방문이며

그 목적은 ‘택한 백성을 데리러 오심’입니다.

이 땅의 방문은 첫 번째와는 다르게

이 영광과 높은 신분으로 오심으로

세상은 공개적으로 오시는 그 분을 볼 수 있고

놀라게 됩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쫒아 강림하시리니

 

주님을 창으로 찌른 자들도 봅니다.

이 재림, 예고되어 있지만 정확하게 몇 년

몇 월인지는 알려지지 않은 만큼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룰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우리 신앙

우리 신앙은 현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세적인 것에만 머물고 있음은 유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미래적이고 영원함을 지향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과 사도들은 바른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낮은 곳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아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다시 오실 예수,

심판하실 예수와 함께 왕 노릇 할 것 까지 믿었기에

그들의 삶에선

현재의 가시관을 기꺼워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훗날의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하는 신앙과

믿어지는 신앙은 차이가 큽니다.

믿어야 하는 신앙은 나로부터 출발하지만

믿어지는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믿어야 하는 신앙은 머리까지만 미치지만

믿어지는 신앙은 삶에 미칩니다.

 

주님과 함께 죽은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함께 하늘보좌 우편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미래지향저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 먹는 것 때문에

이 신앙 ‘버리지 못 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모두의 고백이 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결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생애의 모든 일을 믿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다스림 등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고백이나 지식만이 아닌

삶의 실천을 뜻합니다.

 

말구유는, 낮아지심,

십자가의 죽으심은, 복음으로 인한 고통 감내

부활하심은, 새 성품으로 말미암는 영적 삶

승천하심과 재림하심은, 위로받는 삶입니다.

 

교리만 믿으면 죽은 신앙됩니다.

교리없이 행동만 앞세우면 서툰 변화가나 운동가가 됩니다.

내가 믿고 내가 행동할 때 이러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와 다스림속에선

일치를 이룬 산 신앙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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