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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야 모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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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3-29 22:26 조회 1,406회 댓글 0건

본문

한 경구를 소개합니다.

“인생은 시로부터 시작되어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음악으로 완성된다.”

-여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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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120년 세월을 3등분 할 수 있습니다.

시 같은 세월은, 애굽의 궁궐에서 모든 학문과 학술을 배운 왕자시절입니다.

 

눈물의 세월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떼를 돌보던 양치기 시절입니다.

 

음악의 세월은, 자기민족을 바로왕에게서 건져 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인 지도자 시절입니다.

 

무엇하나 의미없는 시절이 없고,섭리에 의한 삶이라지만

가장 아름다운 삶은 언제일까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광야생활

궁궐시절에는 풍성함의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 곳 생활에서 그는 하나님을 뵙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민족과 애굽인의 다툼에 끼어들어

애굽인을 밀쳐 죽이는 사고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살기 위해 도망 나온 미디안 광야의 삶은

생활적으로 궁핍하고 고독을 뼈저리게

실감한 생활일지라도 결코 피폐함만이

아닌 소중한 하나님을 아는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광야 40년 생활,

처음부터 광야에서 태어난 그가 아니였기에

갑절로 힘든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여의도의 큰 아파트에 살다가

안산의 작은 집으로 옮겨가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와서 멍든 팔을 보여주며

“집이 좁아 자꾸 부딪혀서 아퍼요

이젠 돈 한번 실컷 쓰고 싶어요”하며 울먹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보니 독방이 있었습니다.

그 감옥방에서 40년을 산다면 어떨까요?

 

처음부터 의도된 삶이 아니기에

숱한 후회와 벗어나고자 했던 몸부림과

서서히 늙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낙심과

가난함에서의 불편을 겪는 막연한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2) 광야의 유익

그럼에도 몇 가지 얻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1.양치기의 충성은, 작은 일의 충성이었고

어쩌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충성이었다 할지라도

훗날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수 있는

큰 충성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 온유함입니다.

모세는 한 성질하던 사람입니다.

또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혈기를 다스릴 줄 아는 온유의

사람이 되었기에, 훗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과 더디 믿는 불신의 불 경건 앞에 적당한 화를 내는

‘지면에서 온유함이 가장 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자연적인 늙음으로 온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광야의 고난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구 상은, “병을 앓아야 천국행 공부를 한다”고 했고

신영복은,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가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이다“고 했습니다.

 

3. 믿음입니다.

믿음은 지식에서 나지만 경험에서 완성됩니다.

모세의 믿음은 부모로부터 심겨졌지만

광야에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광야는 찬바람, 더운 바람, 불, 뱀과 전갈만 있다지만

광야의 밤하늘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일깨워 주고

광야의 궁핍함과 역경은 임마누엘의 기적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괴테는 “삶의 기쁨은 큰 것이지만 지각 있는

삶의 기쁨은 더욱 크다”고 했습니다.

 

“풀무는 은을, 도가니는 금을 여호와는 사람을 연단하시느니라.”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 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이러한 믿음은 광야의 훈장입니다.

 

3)광야의 필요

민족이나 개인에게 광야는 절대적 필요과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광야생활에서 애굽의 문화와 노예근성을

버릴 수 있었고

 

야곱도, 광야를 통과하면서 이방신앙과

아끼던 장신구를 곧 우상을 상수리 나무아래 묻는 결단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좋은 가문과 명문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훌륭한 인격,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의 고난 속에서만 비로써 다듬어지고 완성됩니다.

고난이 없다면 교만하고 방자하여 쓴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 교수는 31세의 신학, 철학교수가 되었지만

50세에 직장암을 겪은 후

참 철학자, 참 신학자, 참 성도로 거듭났습니다.

 

이 광야 때에 사람이 보이고, 하나님이 보이고, 믿음도 알게 됩니다.

이 광야가 얼마나 가치있던지?

모세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이 광야의 만남이 진정한 인격적 만남이고

이 광야의 고백이 진정한 신앙고백이 됩니다.

 

흔히 전우애라고 합니다.

전장에서의 신의와 우정이 만들어졌던 만큼

진짜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는 무엇일가요?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하고 등의 모든 과정이 광야일 수 있습니다.

 

결론) 모세는 물론 모든 광야생활의 주인공이

간과해서는 않되는 일이 있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보다 더 극심한 강에 버려진 그 아기 모세를 건져

올리게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애굽궁에서 살게 하신 이는 누구입니까?

 

광야살이가 고추 당초보다 맵고 어렵다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신 이는 누구십니까?

처음부터 이런 섭리, 사랑 속에서 하셨습니다.

 

고 강영우박사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맹인으로써 50년간의 삶은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장애를 뛰어넘는 삶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복된 삶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고난의 광야길에 함께 계시며

“모세야, 모세야”하시며

부르심 같이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와 같이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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