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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건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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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2-02-07 19:23 조회 1,39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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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는 1886년도에 대동강에서

순교한 미국인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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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리나라는 약 23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복음의 수출국가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틀 무렵,

허약한 한국교회는 일제와 싸웠고, 일제와 싸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6.25때 공산당과 맞서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정금된 신앙은

초기 선교사들로 잘 받았기 때문입니다

 

1) 초기 선교사

우리나라의 초기 선교사들은 훌륭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인 경우 미국 대부흥이 일어난 후이기에

그들의 신앙은 불꽃같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참으로 지적능력도 갖춘 사람들이,

참으로 선교에 함께 하고자 했던 성도들의 지원을 받아

똥냄새 나고 가난하고 각종 억압과 부패가 심각한

이 나라에 와서 참 빛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보다, 멋진 선교보고서를 보내기보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병원, 학교등을 세웠습니다

즉 세례교인을 증가시키는 것보다

의료, 교육에 힘썼던 것입니다

 

이런 일에 교회가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했고

전도하는 일에는 지역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소명은 있으되 실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영적 혼란을 가중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실력은 있으되 소명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열강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청교도의 후예들였기에,

그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였기에

그 청교도들은 사도들의 후예였기에

한국교회의 기초석을 온전하게 놓아주었던 것입니다

참 열과 참 빛을 함께 주었던 것입니다

 

2) 우리 신앙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긍지를 지닐만한 반석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도 선교에 협력하고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로 모입니다

세계의 이런류의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우려됨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종교적 의전’은 보이는데

성도 개인의 삶에는 ‘경건함’이 상실되었습니다

곧 ‘의와 사랑’의 상실입니다

 

세계적 교회가 있고, 열심있는 신앙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OECD국가 중 부패지수가 심각한

국가에 포함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가 그랬습니다

종교적 의전은 성실했지만

의와 사랑은 상실되어 주님께 책망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그 시대와 같습니다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 두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24)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건물만 지으면 전도하기가

쉽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건물을 지어놔도 전도가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한 신문을 보니, 교회하던 곳에 사찰이 들어서서

교회첨탑에 십자가 대신 절마크를 붙여 놨습니다

 

한 단면이지만 감소하는 교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자존심 상한 모습입니다

 

왜 감소할까요? 여하한 인구는 증가하는데,

1.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가 함께 감소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2. 특별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속한 만큼, 세상은 꺼려한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힘을 갖고 있습니까?

 

3. 교회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의와 사랑인데

교회가 그만 잃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유일까요?

 

성도 개개인이 어두움의 일에 참예말고 오히려

책망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합니다

성도 개개인이 사람들에 대한 긍휼, 자비를 발휘해야 되는데

이것도 없습니다

 

왜 하지 않을까요?

몰라서가 아니라 손해보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이 ‘생명결여’라는 큰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반석 위에 세움을 받지 못한 교회란 증거가 됩니다

이 신앙은 ‘부실신앙’입니다

시대의 곤경이나 개인의 곤란이 오면 어김없이 무너져버립니다

 

이 근본 이유는

목회하는 목사님들의 잘못입니다

기술력을 앞세워 교회를 세우고자 했을 뿐

초기 선교사들처럼 정금된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엡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변질은 한 순간에 오지 않습니다

부실이 먼저 옵니다

성장 위주, 성과 주의, 외모지향주의가 속성으로 치달아 부실이 됩니다

그리고 원칙이 무시되거나 생략될 때 부실이 됩니다

 

교단의 경쟁이 부실 목회자를 양성하고

교단이 아닌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개인이 선교사로써 홀로의 경우에도 이 부실이 우려 됩니다

물론 천주교처럼 교회나 선교사를 교단에서 확실시

한다고 해서 다 온전한 것도 아닙니다

이는 방편의 문제일 뿐,그러나 부실이 쉬운 구조입니다

참 이유는 참신앙의 소유자이냐? 가 관건입니다

 

3) 신앙 길

신앙에도 양적신앙이 있고

질적신앙이 있습니다

정금된 신앙은 양적신앙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양적싸움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신앙도 양적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초기의 선교사들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신앙은 미디안 300용사 같은

정금된 신앙의 소유자들입니다

큰 것 보다 좋은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훌륭함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의와 사랑’의 구현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 3인이 장로였습니다

국회의원 중 3/4가 신자랍니다

아니 전체인구의 3/4가 신자랍니다

그 빛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는 반딧불로 책을 보았다는데

이런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고민은 ‘무엇을 하늘에서 더 내려 받아야 하나?’가

아닙니다

왜 빛이 없는가?

왜 맛이 없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언제고 집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 다음, 기둥이며

그 다음, 지붕입니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습니다.

아파트의 선전문구이지만,맞습니다

 

우리 신앙 집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이 터 위에 세움을 받는 기둥은 ‘의와 사랑’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면

의와 사랑의 기둥은 자연적입니다

 

마지막 지붕은 ‘성령충만’입니다

이 3가지가 서로 유기적이며 다 함께 합니다

 

결론) 올해의 신앙건축은 튼튼해야 합니다

세상은 흑룡의 기운을 사모한다지만

우리는 반석위에 의와 사랑의 기둥과

성령충만을 얹어야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던 중

브라질에는 20층 건물이 부실해서 무너지는 장면이

뉴스에 올랐습니다

신앙이 부실하면 시대와 세상에 민폐가 됩니다

신앙이 좋을수록 도덕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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