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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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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9-17 23:04 조회 1,4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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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물을 좋아하나요?

저는 말이 참 좋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기수가 누구냐에 따라

전력질주하는 경마가 되고, 전장에서 용감하게 누비는

군마가 되고 수레도 끌 수 있는 역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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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 크던 작던 혼자 있으면 겁 많은 동물이기에

개에 쫒기고 닭에 놀랍니다

 

성경은 성도를 이러한 말에 비교했습니다

아1: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1) 예레미야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대 유대 땅의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어느 적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했던 것 같이

하나님이 말씀의 도구로 삼아주셨습니다

 

당시 자기 민족인 유다는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레미야는 곤혹스러웠습니다

주신 말씀은 책망이요 경고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족 역시, 하나님은 물론 그 말씀과 선지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유대민족이 그러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더

회개와 경고를 촉구했고

민족은 더욱 강팍하여 예레미야는 힘들었습니다

 

다가올 심판의 심각성!

고통당할 자기민족!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상한 심령으로 울 수 밖에

없에 ‘눈물의 선지자’ ‘사랑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그 눈물의 노래입니다

그의 탄식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애1:1~2)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않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밤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자기민족의 당할 처지를 생각하여 이렇게 우니 ‘애국자’요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을 탄식하니 ‘참 성도’입니다

 

2) 예레미야의 두려움

이런 마음, 이런 신앙의 소유자가 되니 마음은 물론

몸도 편할리 없습니다

감옥을 들락거려야 하는 등의 고초를 겪습니다

 

감옥에서 갓 나온 지금은, 왕 앞에서 목숨을 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 하나이다”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왕에게 목숨을 구하다니, 고초를 많이 겪고도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나니,

 

왜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며

왜 담대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경우는 어떨까요?

왜 그럴까요?

1.죽음을 사모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산 노인들이 “죽어야한다”고 합니다

‘더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감옥에서의 모범수는 언제나 ‘사형수’랍니다

무기수가 되고 싶어 모범적 생활을 한답니다

자살은 왜 할까요?

죽음을 사모해서가 아니라 삶의 희망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관한한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죽으실 것은 물론 다시 사실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죽음 앞에 담대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가장 무서운 인류의 형벌이요

협박이고 위험이며 원수입니다

즉 삶의 종착만이 아닌 지닌 속살입니다

 

2.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곤란 속에서 함께 하시는 주의 종도

종종 죽음 앞에 떨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을 더 의지합니다

 

이상한 현상, 믿음이 약한 존재라기 보다 자연적 현상이며

일반적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주의 종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은 옛부터 약한 자, 천한 자, 미련한 자를

들어 사용합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왕 앞에서 조차 쇠사슬에 매인 체

예수 믿으라고 전도했던 종입니다

 

그러나 그도 갑자기 닥친 죽음을 모면하고자

광주를 타고 성안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들 앞에서 서는 것조차 두려워

떨었던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거꾸로 죽기를 자원했던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주님 밤새워 기도하실 때, 곁에서 자던 무리 중 하나였고

주님 잡히시고, 심문받으실 때 여종이 “너도 그와 한패이다“

하는 말에 도망갔던 위인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용하시므로 특별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3) 우리의 불완전함

여기서 우리는, 저들을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저들은 통해 못난 자신을 사랑할 용기도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을 보다 더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는 이해력도 생깁니다

 

주님의 팔복 중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

 

하신 복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진가를 알기 전에

허약성을 먼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긍휼함을 입은 사람은, 주의 은혜를 찬미합니다

이제 그 사람은 자신에게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타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닌

같은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들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이 은혜가 없으면

사람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야박하여 모순과 갈등을 부추깁니다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결론) 말은 겁이 많지만 기수가 용감할 때

말도 용감해 집니다

하나님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존재인 우리에게

믿음으로 영생을 주셨고 한 없이 연약한

존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나입니다

우리입니다

주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고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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