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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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앙이 어려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핍박’이었다면, 현대는 ‘변질’ 때문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본, 어느 교회당에는 ‘명상치료쎈터’라는 간판도 있었습니다.
예수외에 다른 것들을 더하고 더하는 것은 참예수가 없다는 증거요
생명없다는 반증입니다.
1)생물학적
우리는 과학을 신뢰합니다.
과학에는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며
언제나 그 법칙에 대한 결과를 얻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멘델의 법칙은 A와B를 더하면 처음에는 A나온 후
B도 나옵니다.그 후 아주아주 어쩌다가 ‘돌연변이’도 나옵니다.
이 법칙 따라 우리들은 외모나 성격이 비슷한 겁니다.
우리들이 이제는 누구와 합해졌느냐 따라 또 다른 용모와 성격의 후손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죄인된 내가 예수와 합하면 어떨까요?
여기에도 생명법 따라 법칙이 작용됩니다.
*거룩한 교회
*의로운 사람(신실한 사람)이 태어납니다.
이 과정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예수와 합해짐은, 의미적연합이지만 성령하나님이 내안에서 작용하여
생물적으로써 사회적으로써의 새 성품이 주어집니다.
이 생명법칙은 언제나 동일하기에
사도바울에게도,초대교인들에게도,아프리카원주민들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작용된 겁니다.
따라서 시대와 민족은 달라도 한 성경을 볼 수 있고 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동일한 성령의 소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엡4:6)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위에 게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시도다
이들의 성품은,세상보다 천국을 지향합니다.
죄보다 의를 지향합니다.
이 소욕이 없다면 그는 누구이건 간에 성도가 아닙니다.
이 성향이 없다면 어떤 공동체든 기독교회는 아닙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거룩함’보다 행복함을 더 지향한다면
그럼에도 ‘의로움’보다 더 따뜻함을 지향한다면 어떤가요?
세상적이고 인간적일 수는 있어도
성령으로 말미암는 생명법의 작용은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히13:12~13)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여기에 ‘행복함’이 있습니까? ‘따뜻함’이 있습니까?
단어조차 없습니다.
주님이 피 흘려 이룩한 우리의 ‘거룩함’을, ‘행복’이니
‘따뜻함’이니 하는 등의 미끈함으로 바꾸었고
우리안에서 생명법으로 활동하시는 성령하나님을 ‘명상’정도로
변질 시켰습니다.
이러한 신학과 신앙과 목회철학이 ‘만물가운데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주의 몸된 교회’를 고작 ‘명상쎈터’로 전락 시키는 겁니다.
주님의 대한 모독이고, 성도에 대한 기만이며
십자가 도의 배도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왜, 성부와 성령하나님은 제외된 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앙이
되었습니까?
왜,천부교나 성령교가 아닌 기독교가 됩니까?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은 성자하나님을 통해서 나타내시고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성부께 나아가는 합법적신앙이며
또 성령충만은 예수께 인도합니다.
이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합니다.
전하고 전해지는 과정에 이런저런 군살이 붙어서 잘못된 예수를
믿기 쉽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의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예수와
연합되었기 때문 아닙니까?
*아기로 오심,
왜 예수님이 아기로 오셔야 했습니까?
어른으로 올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삶을 체휼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전지하신 만큼,인생의 삶을 다 아시지만
체휼하심은, 바라보고 믿는 자들에게 큰 신뢰를 줍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파도가 치고 어두움이 밀려오는 바다위의 제자들을
찾아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능력이라면
갈매기처럼 하늘을 날 수도 있고,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칠 수 있습니다만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물위를 걸어오심으로, 제자들의 두려움을 체휼하셨을 겁니다.
‘파도의 높이와 바람의 세기’를 아셨을 겁니다.
그러한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은 우리의 염려와 두려움을 아시는 분입니다.
세파를 겪으신 분입니다. 그것도 앞서,
죽음도 앞서 가신 분입니다.
아기로 오셔, 33년의 삶동안 무엇인들 모르시겠습니까?
*아들로 오심,
아들은 후사입니다.상속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세상의 상속자입니다.
애당초 주인이시지만, 우리를 위한 후사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후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사를 메었고,
모든 권세,정치사안의 통치자입니다.
미국 역사상 흑인대통령이 나온 것, 유감되게 김정일의 폭정도
주의 사안입니다. 땅은 물론 하늘까지도,
*기묘자라,
기기묘묘하신 분입니다.신비합니다.
하나님이면서 사람입니다.
종이면서 하나님아들입니다.
*모사라,
모든 일을 성취하는 지혜의 으뜸입니다.
세상 창조도 운행도 우리의 구원도 훗날의 심판도,예수님의 지혜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스승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변론하시면서 자신의 선재성을 계시하셨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기소개였습니다.
요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특별히 ‘있느니라’는, 그 후 지금까지의 계속됨을 의미합니다.
훗날, 주님을 붙잡으로 온 하졸들에게 “내니라‘는
‘나는 나니라, I AM WHO I AM'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찾아,별 건너 오시고
대신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하나님을 향하여,“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구체적으론,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했습니다.
*평강의 왕이라,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평화,평안이 있습니다.
개인,가정,공동체 등
주님 부활 하신 후,첫 말씀이 ‘평안하뇨“였으며
승천하시면서는 “평안이 있을지어다”하셨습니다.
주님은 평안을 주셨습니다.
죄 사함의 평안, 성령으로 말미암는 희락 등
평안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희망을 일구어 냅니다.
그만큼,세상은 힘들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만만한 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얻는’ 때와 일도 있는 겁니다.
결론) 예수를 믿는 믿음은, 위의 내용대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이때,성령님이 내 안에서 생명법을 이루워 내셔 '영의 생각'을 이룹니다.
그 생각은 삶을 이룹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잖습니까?
나로 하여금 영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이룰 수 있는 소욕을 주십니다.
능력도 주십니다.
자동차를 끌고 가는 일과 타고 가는 차이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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