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HOME · 설교&칼럼

생명법 > 설교말씀

생명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1-03-19 18:05 조회 1,370회 댓글 0건

본문

어느 신학대학교총장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면서 ‘예수정신’을 잃지 말고

다시 붙잡아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인터뷰내용이 기독교를 왜곡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이 훌륭해도 교회가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할

‘복음의진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총장은 번지수를 오판했습니다.

기독교의 2번지를, 1번지인 냥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1)인자가 온 것은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셔야했는가는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a.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자를 찾아 구원하려함이라

b.하나님의 아들이 온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함이라

c.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어 섬기려함이라

 

위의 말씀들을 집합해 보면 ‘예수정신’을 나타내기보담

우리의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개나 소나 등의 보편적 구원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택정함을 받은 그 백성의 구원입니다.

 

사도들의 멧세지는 어떻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의 멧세지를 강조하며,예수님과 십자가 사건을 우선 전파했을 뿐

‘정신을 붙잡아라‘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위기초래는 ‘예수정신부재’가 아니라

‘복음의 부재’입니다.

특별히 교회지도자를 만드는 총장으로부터 1번이 아닌 2번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유감입니다.

 

‘예수의정신’,은 우리 주되심을 떠나서도 탁월합니다.

우리만이 아닌 모든 인류가 붙잡아야할 덕목입니다.

옛컨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게 와서 배워라”

또 ‘하나님 경외와 이웃사랑’등

그러나 이 정신은 타종교에서도 가르칩니다.

아니 예수님 보다 앞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신앙인만큼,믿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나의 대속의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예수님을 ‘예수님’되게 하는 일이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인류의 여타 성현보다 인정하는 일입니다.

또한 경배의대상이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성경대로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a.영혼이 살아납니다.

흔히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죄에서 죽은 내 영혼이 되살아나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게 되는 일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중심된 인격의 좌소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영적존재인데

즉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로 영혼이 죽으면 생활이 죽고 마침내 몸도 영영 죽습니다.

반면 영혼이 살아나면 살아난 것만큼 생활이 살고

죽을 몸도 살아납니다.

 

우리 손과 발은 마음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결과 빛에 거하기도 하고 어둠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에 결정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없을까요?

영혼입니다. 그리고 영혼에 미치는 요소는 성령이거나 마귀입니다.

 

내 영혼이 어떤 상태냐? 궁금합니까?

하나님을 아느냐?무지하냐?

그 결국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체계를 잘 아는 사도는 늘 영혼을 축복했습니다.

요3서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b.생활이 단정해집니다.

빛이 좋은 환경은 깨끗합니다.건강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기에 어둠에 계속 머물 수가 없습니다.

고의든,연약하든 범죄의 경우, 그 죄악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 경건할수록 불의는 사라집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c)몸이 부활합니다.

영혼은 즉시 구원함을 받아 살아 난 반면 몸은 때가 되어야 합니다.

몸에 박힌 죄가 죽어 장사된 후 예수님 재림시에 부활합니다.

수정되거나 개선된 상태가 아닌 새로운 몸으로의 부활입니다.

롬8:11)~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부활의 몸은,마치 천사와 동일합니다.

막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몸이 되니 생명이 약동합니다.

생명있는 풀과 나무들이 머지않아 잎과 꽃과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뿌리,가지 그리고 잎 등

생명없는 풀과 나무는 봄과 여름에 말라질 뿐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영혼,생활,몸으로 살아납니다.

과거 죽었을 때의 역순입니다.

 

2)성령의 생명의법칙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삼위의 하나님은 고유한 역할로써 활동합니다.

성부는,나의 구원을 섭리하셨습니다.

성자는,친히 세상에 오셔서 실제로 죄값을 죽음으로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사된 후 부활의 첫 열매로 우리의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성령은, 이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셨고 우리안에 보혜사로 함께 계심으로써

십자가가 인격과 생활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이미 삼위 하나님의 활동이

이루워 졌고 성령님의 보장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빌1:6)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이 성령님은 성도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 자녀된 확증이요 부활의 증표입니다.

롬8:9)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뿐만 아니라 성도에게 예수님과 같은 새 성품의 소원을 주십니다.

그 삶의 고난도 감수 할 수 있는 용기 인내도 주십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을 가까이,죄와 죽음에 대해서 담대함,사람에 관한 한 긍휼함 등

예수님의 생명이 내게 주입되고 성령님이 내안에 머물러

비로써 작아도, 부족해도 예수화되어 예수성품과 예수정신이 배어나옵니다.

 

여늬 종교는 이 소원을 내가 이루워야 합니다.

애쓰고 힘써도 되어질 수 없습니다.

타락성과 연약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셨고 성령님이 이루워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칩니다.“나 구원받았어” 감사와 감격이 넘칩니다.

여기에 빚진 자로써 헌신과 충성을 제물로 드립니다.

 

이 성령님의 활동하심은 일정하기에 ‘법칙’이 됩니다.

그 모양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 법칙이 내안에서 활동하고 작용하여 내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소원을 만들어 냅니다.

 

3)죄와 사망의 법

성령의 생명의 법과는 정 반대의 소원을 내는 활동입니다.

이 법아래 모든 자연인이 다 붙잡혀 있습니다.

두목은 마귀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는 소원을 만듭니다.

정욕적인 소원입니다.

결과는 ‘사망’입니다.

 

결론)우리가 붙잡아야 할 도리는 ‘예수정신’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살 때,성령님은 우리안에서 생명의 법칙따라

새 성품을 주고 이루게 하십니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생명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의 법칙에 순종할 때,우리는 지식에 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